번개돌이 by 귀우혁

번개돌이

1.
  때는 아마 조선시대 언제인가보다. 어느 임금님인지는 몰라도 황공무지하신 그 나라님께서 으리으리한 가마를 타시다가 튼실한 궁둥이며 두툼한 뱃살이며 무거워서 가마가 우지끈 부러져서 가마를 담당하던 어느 딱한 냥반이 포도청에 끌려들어갔다는 말이 돌았으니 말이다. 뭐 그게 중요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지만서도. 아무튼 그때에 경기도 어느 구석에 세상이 일어난다 하여 세기(世起)라 이름 지은 마을이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단 말이다.
  세기마을에는 한 여든 가구 민초들이 살았는데 그중에 성은 하연(河蓮)이라는 소저가 꽃다운 나이에 용모단정하기로 으뜸이었다. 이 하연이라는 소저는 어려서 어미를 잃고 아비 손에 키워졌는데 그 아비 되는 사람을 볼까하면 쉰 너덧 살 먹은 황금봉(黃金奉)이라는 첨지였다. 여기서 첨지는 벼슬이름 첨지가 아니라 적당히 먹물이 들고 적당히 나잇살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첨지라 불러주는 것이었다. 이 황 첨지는 뭐 대개 양반어르신네가 그렇듯이 하는 일은 없지만서도 물려받은 땅뙈기에 소작을 주어 제법 넉넉하게 살았는데 소작인들에게 쇠경을 받는 일은 아무래도 직접 하기 뭐시기하다해서 김만덕(金萬德)이라는 행랑아범을 하나두고 부리고 있었다. 이 김만덕이란 작자는 서른여섯 먹은 곰보였는데 팔자 기구하여 중인의 집에 태어났으나 조실부모하고 유리걸식하며 반머슴마냥 살다 그럭저럭 언문이나 뗀 덕에 어찌어찌 황 첨지 댁에 행랑아범이 된 작자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 첨지가 늙어 내쳐진 관기(官妓) 하나를 어디서 데려와 김만덕이 하고 짝을 지어줬으니 총각귀신 될 일은 면했다 하겠다. 김만덕이가 황 첨지 소개로 맞아들인 관기는 이름인지 기명(妓名)인지 초희(苕姬)라고 하였는데 떨어진 동백 마냥 시들한 중에 제법 예쁜 태가 남아있고 사람이 반듯하여 김만덕의 입은 노상 큼지박 함지박 벌어졌던 것이었던 것이었단 얘기올시다. 그리고 때는 춘삼월.
2.
  황 첨지 댁 행랑아범 김만덕이는 소작인들이 모는 잘 심었는지 논물은 잘 대고 있는지 하루 종일 살피다가 해가 뉘엿뉘엿 해서야 세기마을 가운데에 떡하니 있는 황 첨지 댁으로 돌아왔다. 사랑채에 들어앉아 공자왈맹자왈하는 황 첨지에게 살피고 온 일을 소상히 아뢰고 물러나니 아직 길지 않은 해는 훌떡 저물어 날이 캄캄하였다. 구름이 끼었는지 달도 별도 뵈지 않는 것을 어름어름 마당을 가로질러 행랑채에 닿았는데 문살에 바른 닥종이에는 등잔불이 어른어른 비쳐들고 있었다. 그리고 김만덕이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번쩍하고는 사방이 파르라니 훤해 지는 것이었다.
  “어이쿠!”
  소심한 김만덕이가 놀라자빠지고 나서야 멀리서 우르릉쿵딱하고 천둥이 울렸다.
  “어매, 비라도 올라는가?”
  김만덕이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시 한 번 번쩍하고 시퍼런 벼락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가까이서 천둥이 울렸다.
  “허어, 요상타. 비도 안 내리는데 천둥번개만 요란하니 무슨 일일까?”
  김만덕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을 열라는데 안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는 것이었다.
  “아이고!”
  “아니 무슨 일인가? 여보님?”
  김만덕이가 화들짝 놀라 방문을 벌떡 열었는데 좁은 방 복판에는 그의 아내 초희가 이불을 펴고 누워있었다. 그런데 초희는 온통 땀에 젖어 끙끙대는 게 아닌가. 김만덕이는 초희의 불룩한 배를 쳐다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여보님, 여보님. 괜찮으신가?”
  “아이고, 서방님! 애가 나올라나 봐요. 가서 뺑덕할멈 좀 불러줘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산(産)달은 고사하고 아직 다섯 달을 넘겼을까 말까한 데.”
  “아이고, 서방님! 그걸 따질 시간이 어딨어요. 어매, 어매! 머리가 나오는가 봐요. 어서 불러와요.”
  “알았소, 여보님. 조금만 참으시구려.”
  놀란 김만덕이가 초롱불도 챙기지 못하고 후다닥 달려 저녁을 먹고 있던 뺑덕할멈네를 들고 뛰어오니 아내는 눈이 거진 반 돌아가 있을 지경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김만덕이를 뺑덕할멈이 내쫓고 물이나 끓여오라 하니 김만덕이가 뛰고 넘어지고 구르고 기어 부엌으로 달려갔다. 소란 통에 나온 것인지 주인인 황 첨지의 외동딸 황하연 소저가 부엌에서 솥에 물을 끓이고 있다가 김만덕을 보고는 배시시 웃었다.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하던 김만덕이가 그제야 숨을 돌렸다. 타닥타닥 아궁이에 장작이 타고 동동 김만덕은 발을 구르고 절래절래 황하연 소저가 고개를 저었다.
  어찌어찌 물이 더워 김이 나자 놋쇠대야에 퍼가지고 김만덕이 들어서는 행랑채를 향해 조심조심 뛰었다. 행랑채 앞에 이르자 안에서 힘줘 하고 외치는 뺑덕할멈의 목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응애 하는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축하드려요.”
  고운 목소리가 정겹게 들려기에 김만덕이 돌아보니 황하연 소저가 따라와서 웃고 있었다. 김만덕이는 아직도 얼떨떨하다가 그제야 자신이 아비 되었음을 알고 활짝 웃었다. 김만덕이가 껄껄 웃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는지 문 안쪽으로 소리쳤다.
  “뺑덕할멈, 데운 물 가져왔소. 그런데 금줄은 어찌 준비하면 되겠소?”
  금줄이야 왼줄로 꼬고 솔잎과 숯을 꽂는 것이 뻔 하겠지만 아들이면 고추를 더 꽂는 법이니 결국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묻는 것이었다. 안에서는 아기 울음소리만 들리고 대답이 없어 김만덕이 다시 물으려는데 뺑덕할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추네. 건강한 아들이야. 건강하긴 한데…….”
  뺑덕할멈의 목소리가 어째 말끔하지 않았다.

3.
  “에효…….”
  모내기를 감독하던 김만덕이가 잠시 짬을 내어 행랑채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염소울음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툇마루 구석에서 자투리 천을 깁고 앉아있던 김만덕의 부인, 초희가 바늘을 요리조리 움직이던 손길을 멈추고 김만덕의 곰보얼굴을 흘겨보다가 흥 하는 콧소리를 내고 고개를 숙여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에효…….”
  “아니, 이 냥반이 기껏 차려준 밥은 먹다말고 왜한 숨이에요.”
  몇 땀을 꿰려는 찰나에 다시 김만덕이 한숨을 쉬자 초희가 바느질하던 것을 팽개치듯 내려놓고는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
  “에효, 낸들 한숨을 쉬고 싶어 쉬겠소? 나오는 걸 어쩌란 말이오.”
  “아니, 왜 한숨이 나오는 데요?”
  “그럼 당신은 한숨이 나오지 않소? 아들이라고 태어난 것이 저 모양인데?”
  김만덕이는 턱 끝으로 굳게 닫힌 행랑채 안쪽을 가리켰다. 초희는 그 턱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굳게 닫힌 방문을 보고 눈동자를 불안하게 떨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김만덕과 비슷한, 그러나 여자답게 조금 더 작고 가는 한숨을 쉬었다.
  “나라고 배 아파 나은 자식이 저 모양인데 마음이 편할 리 있겠어요? 그저 그래도 자식이니 어찌 참고 키워보는 수밖에요.”
  “에효, 안 될 말이오.”
  김만덕이가 다시 한숨을 쉬고 방문을 보는데 그 안쪽에서 무엇인가 콩 하고 작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가만히 들어보니 무언가 작은 것이 떨어지는 것도 같고 쓰러지는 것도 같은 소리다. 김만덕이는 고개를 돌려 봄볕이 내리쬐는 마당을 보았다. 사방이 훤한데도 김만덕의 마음은 아들이 태어나던 어두운 밤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방안에서 콩 콩 하고 울리는 작은 소리가 마치 그날의 천둥소리 같았다.
  “어찌 태어난 지 한 달은 고사하고 며칠 되지도 않은 아기가 벌써 걸음마를 시작하겠소. 그날 밤하늘에 비도 없이 천둥번개가 요란하더니 천둥벌거숭이 괴물이 태어나버린 게요. 내 비록 배운 바는 적지만 세상천지에 사람의 자식이 저럴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소. 저것이 더 자라면 무슨 사단이 나도 큰 사단이 나고 말게요.”
  “그럼 어쩌자는 말이에요?”
  “버려야지…….”
  “예? 그게 무슨!”
  초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황 첨지는 사랑채에서 책을 편 채 잠을 자고 있을 터였고 노비들은 논밭에 일을 나갔을 터이니 그들 내외 밖에 없을 터였다.
  “그, 그게 참말이오? 그래도 아직 어린 것을 어찌…….”
  “그럼 이 마당에 거짓부렁이나 할 여유가 어디 있겠소? 나면서부터 머리털이 나고 이가 난 걸 보면 들에 버리면 매가 되고 산에 버리면 범이 될 아기요. 저 아기, 아니, 저 괴물은 내 씨에서 난 것도 아니고 당신 밭에서 난 것도 아니요. 그냥 어쩌다가 천둥새나 벼락범이 사람의 허물을 쓰고 세상에 놀러 나온 것일 게요. 어서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낼지도 모르지.”
  소심하고 말재간이 없던 김만덕이 치고는 제법 긴 얘기를 들뜬 목소리로 늘어놓았는데 그 말이 그럴듯했는지 초희는 흐응 하고 고개를 기울이더니 결국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방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그럼 어떻게 버리지요?”
  “내가 일 나가는 김에 마을 밖 서낭당까지 가서 버리고 올 테니 짚으로 엮은 광주리에 담아 주구려.”
  “알았어요. 하지만 아기가 벌써 제법 컸으니 대나무로 엮은 소쿠리가 낫겠어요.”
  하고는 초희는 행랑채 뒤쪽에 걸려있던 대나무로 엮은 소쿠리를 가져와서 그 안에 방금 깁던 천 조각을 깔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초희는 두 손으로 소쿠리를 받쳐 들고 나왔는데 이따금 소쿠리가 흔들리고 안에서 옹알옹알 하는 소리가 났다. 김만덕이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더니 초희한테서 소쿠리를 넘겨받았다.
  “어이쿠, 아침보다 무거워진 것 같네. 그새 또 컸나보구나.”

4.
  혹시나 누가 볼까, 혹시나 소쿠리 안의 아기가 길을 기억할까, 마을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세 바퀴를 돌고서야 김만덕은 서낭당에 도착했다. 금줄이 둘러 처진 당산나무는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크고 검은 가지에는 아직 겨울이 감도는 듯 했고 먼지 않고 거미줄 쳐진 당집은 을씨년스러웠다. 김만덕은 당집에 가까이 갔다가 무서운 마음이 들었는지 창백한 얼굴로 소쿠리를 당산나무 아래 내려놓았다.
  “아기야, 아기야. 너는 어째서 나를 아비로 삼고 초희를 어미로 삼아 태어나 이렇게 괴롭히는 게냐?”
  김만덕은 소쿠리에 덮인 무명 보자기를 걷어내고 내려다보고 원망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김만덕이 내려다보는 곳엔 소쿠리에 담긴 아기가 있었는데 분명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을 텐 데 머리털이 목 언저리까지 자라있고 몸집도 한 살은 넘기고 두 살은 안 되어 보였다. 김만덕은 염소울음 같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보자기를 덮으려는데 아기가 작은 팔다리를 꼬물딱거리며 방긋 웃는 게 아닌가.
  “허허, 네가 웃음으로 나를 홀리려는 게냐? 그럴 수야 없지. 미안하지만 나나 초희는 너를 키울 수 없단다. 서낭신이 널 데려갈지 산신이 널 데려갈지 어느 장돌뱅이나 떠돌이가 데려갈지 모르지만 우리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보자기를 덮지 않고 일어선 김만덕이 몇 걸음 마을 쪽으로 걸어가다 문득 멈춰서는 돌아봤다. 커다란 당산나무 밑에 버려진 소쿠리는 아기가 안에서 움직이는 때문인지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무섭고 두려워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구나. 이름이라도 지어 주어야할 텐 데……. 황 첨지 어르신께 부탁드려볼 것을……. 어쩔 수 없이 내가 지어야하는데 나는 한문은 모르니 언문으로 지을 수밖에 없구나. 어디보자, 개똥이나 갑돌이나 차돌이나 바우나……. 그래! 천둥번개치는 밤에 태어났으니 번개돌이라고 하자꾸나. 그래봐야 새 부모가 널 데려가면 다른 이름을 지어주겠지만 내 나름 선물이라고 생각하려무나. 번개돌이야, 미안하다.”
  그렇게 말한 김만덕이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인지 세기마을 쪽으로 후다닥 뛰어 가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시커먼 당산나무와 흔들리는 작은 소쿠리가 봄볕과 산들바람에 감싸여있었다.
  “아니, 행랑아범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람.”
  서낭당의 풍경에 깃든 침묵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곱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마을에서 서낭당으로 이어지는 깊 옆의 풀숲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길게 땋은 새침한 소녀가 튀어나왔다.
  “그나저나 번개돌이라니 정말 이름 한번 엉터리로 지었네. 어디 한 번 볼까, 번개돌이야? 호호호.”
  소녀는 번개돌이라는 이름이 우스운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다가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고는 당산나무 앞에 놓인 소쿠리를 내려다 봤다.
  “에이, 뭐야. 조금 나이보다 자라 보이긴 해도 그냥 귀엽기만 한 아기인 걸. 도깨비처럼 뿔이 난 것도 아니고 여우귀신처럼 꼬리가 난 것도 아닌데 왜 아기를 버리겠다는 걸까.”
  소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기를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아기를 안아들었다.
  “안녕, 번개돌이야. 나는 황하연이란다. 너 내 동생 할래?”
  그랬다. 소녀는 안마당에 핀 민들레며 진달래며 구경하다가 행랑채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따라온 황금봉 첨지의 딸, 황하연 소저였다. 황하연 소저는 조금 무거운 아기를 품에 안고 요리 보고 조리 보다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꼬옥 끌어안고는 빙빙 돌았다. 붉은 치마가 나팔꽃처럼 펼쳐지며 펄럭였다. 그리고 황하연의 품에 안겨있던 아기가 토실한 뺨을 움직여 방긋 웃더니 입을 달싹 거렸다.
  “어엄마!”

5.
  봄볕은 한창 밝아오고 담장 너머 벚꽃나무에 희고 붉은 꽃망울이 막 개화를 앞두고 부산하였다.
  “아씨, 점심상 가져왔어요.”
  초희는 푸짐하게 퍼 담은 흰 쌀밥 한 공기에 쑥버무리며 달래무침이며 장조림이며 가지가지 차린 것을 소반에 얹어 안채 마루에 내려놓고 문 안에 다소곳이 알렸다.
  “예, 고마워요.”
  문고리가 짤랑이며 방문이 열리더니 봄꽃처럼 어여쁜 소녀가 나오는데 집주인 황 첨지의 외동딸인 황하연 소저였다. 소저는 소반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초희가 말을 붙였다.
  “그런데 아씨. 봄이라 그런지 요새 밥맛이 좋으신가 봐요. 닷새전만해도 입맛이 없다고 미음이니 죽이니 찾으시더니 엊그제부터는 식전에 한 공기 드시고 식후에 반 공기 드시고 반찬도 남기는 법이 없는 데다 안하시던 주전부리까지 하시니 말이어요. 호호호.”
  초희가 깔깔 웃으며 말하였는데 여인치고 밥 많이 먹는단 말을 좋아할 이가 누가 있으랴. 황하연 소저가 소반을 든 채로 곱게 눈을 흘겼다.
  “아니, 행랑어멈도 남세스럽게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요. 안 그래도 요즘 살이 붓는 것 같아 창피해 죽겠는데.”
  “호호, 아씨도 참. 웃자고 하는 말이지요. 그렇게 호리호리 하신데 몇 끼씩은 더 드셔도 될 것 같은 데요. 나도 한창때는 강릉 홍장(紅粧)이니 평양 부용(芙蓉)이니 하는 여인네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했었지만 초희 열이 있어도 아씨 한 명만 못할 것 같은데요. 호호호.”
  “몰라요. 행랑어멈도 참.”
  황하연 소저는 부끄럽다는 듯이 새침을 떼고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방밖에서 깔깔 웃는 초희의 웃음소리가 닥종이 너머로 멀어졌다. 황하연 소저는 방바닥에 소반을 내려놓고 가슴을 쓸더니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난 연후에야 씨익 웃고는 벽장 앞에 다가갔다. 밥을 차렸으면 상 앞에 앉아 수저를 드는 것이 순서거늘 벽장문을 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번개돌이야, 번개돌이야. 밥 먹어야지.”
  황하연 소저는 벽장 안에다가 친근하게 말하였다.
  “응, 엄마.”
  벽장 안에서 똘망똘망한 아이 목소리가 들리더니 너덧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행색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댕기를 땋지도 않고 기른 머리가 등짝까지 내려왔는데 머릿결이 어찌나 억센지 삐죽삐죽 솟은 머리카락이 고슴도치 같았다. 또 옷을 입지 않고 무명천을 몸에 둘둘 말았는데 그나마 천의 기장이 짧아 볼록한 젖꼭지며 토실한 허벅지며 다 드러나는 것이었다.
  “어머, 얘는 그새 또 큰 거 같네.”
  “히히. 밥 왔어? 밥 있나? 밥이다!”
  황하연 소저가 놀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까불까불 뛰어서는 소반에 달라붙어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이는 걸신(乞神)이라도 들렸는지 쌀밥을 한 술 입에 퍼 넣고 나물을 한 점을 집어 먹기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보다도 빨랐다. 황하연 소저는 그런 아이, 번개돌이 옆에 앉아서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주고 거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래 번개돌이야. 언문 공부는 다 했니?”
  “응,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가갸거겨고교구규…….”
  “우리 번개돌이 착하기도 하지. 그럼 오후에는 엄마하고 천자문을 공부해볼까?”
  “응, 천자문 배우면 소학(小學)도 배우는 거야?”
  번개돌이가 숟가락을 입에 물고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올려다보았는데 황하연 소저는 그런 아이가 귀엽고도 가여워 밥풀이 비단 저고리에 묻는데도 꼬옥 끌어안고 말았다. 번개돌이는 번개돌이 대로 황하연 소저의 품이 따스하고 부드러워 더욱 안겨들었다.

6.
  “아씨, 그럼 편히 쉬시어요.”
  저녁상을 물리고도 밤참으로 요기할 것까지 챙겨준 초희가 등불을 내놓고 안채 마루에 앉아서 암청색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는 황하연 소저에게 아뢰었다. 멀리 샛별을 바라보던 황하연 소저는 그 말을 듣고 초희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행랑아범은 거기 간 거예요?”
  “예. 어떤 못된 놈인지 잡아서 혼쭐을 내준다고 마을 남정네들하고 작당을 해서 나갔지요.”
  “그러게요. 어떤 못된 녀석이 남의 모를 밟고 배꽃을 몽창 따놓는 건지 이번에 잡거든 아주 단단히 혼내줘야 지요. 그런데 그런 못된 짓도 판을 제법 크게 벌이는 것을 보면 보통 녀석이 아닐 텐 데 행랑아범이나 마을 사람들이 다치지나 않을지 걱정도 되네요.”
  “호호호, 아씨도 참. 바깥사람이 좀 소심하긴 해도 잡초마냥 살던 사람이라 탁견이고 씨름이고 한 가닥 한다니까요. 마을 남정네들도 힘깨나 쓰는 이들로 몽둥이 하나씩 챙겨들고 나갔으니 별 일이야 있겠어요. 아가씨는 편히 쉬시면서 오는 생일에 첨지 어르신이 무슨 선물을 주시려나 맞춰보고 계시면 돼요. 호호호.”
  초희는 깔깔 웃고는 어둑한 안채 마당을 가로 질러 행랑채 쪽으로 걸어갔다. 황하연 소저는 그 뒷모습이 완전히 어슴푸레한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되었다. 번개돌이야, 번개돌이야. 이제 나오려무나.”
  그러자 안채 장지문이 배꼼 열리더니 작은 머리가 나와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작달막한 사내아이가 쪼르르 달려 나와 황하연 소저의 옆에 앉는다. 사내아이의 얼굴은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데 두 조각 무명 보퉁이를 이어놓은 것을 옷 대신 몸에 둘둘 감고 있었다. 덩치는 제법 커서 마을 아이들과 어울린다면 당연 골목대장쯤은 할 법하였다. 그러나 보퉁이 아래 드러난 다리를 꼬아 양반다리로 앉고 어린 얼굴에는 나름 의젓함을 갖추고 있으니 여느 아이들 같지는 않았다. 아이가 바로 번개돌이였다.
  “어머님, 부르셨습니까.”
  번개돌이는 시선을 내리깔며 중늙은이 마냥 말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황하연 소저가 키득 웃고는 삐죽삐죽하니 허리춤까지 머리카락을 기른 번개돌이 머리에 꽁 하고 알밤을 먹였다.
  “열흘 전까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뒤뚱대던 녀석이 조금 컸다고 벌써부터 점잔을 빼는 게냐.”
  “헤헤, 엄마도 참.”
  번개돌이는 알밤 맞은 자리를 벅벅 긁으면 실죽 웃었다. 그 모습을 따스하게 쳐다보던 황하연 소저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한숨을 쉬었다.
  “휴, 널 업어 온지 보름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컸으니 정말 너는 보통 아이가 아닌가 보다. 이러다 어느 날이고 훌쩍 어른이 되어 어디로 떠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나저나 이제 그만큼이나 컸으니 어미 노릇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 되었구나. 이제 부턴 나를 엄마라 부르지 말고 누나라 부르거라.”
  “하지만 엄마 어떻게…….”
  놀란 번개돌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고 하려는데 또 다시 황하연 소저의 알밤이 날아들었다.
  “번개돌이야, 너도 아는 것처럼 어차피 내가 너의 친모(親母)도 아닌 것을 이제와 의모(義母)가 의매(義妹)가 된다고 무엇이 문제겠니. 내가 너를 혈육처럼 아끼고 동기처럼 가까이 생각하니 무엇이라 부른들 상관있겠니?”
  “음……. 알았어요, 엄마. 아니, 누나.”
  번개돌이는 엄마라고 했다가 이내 누나라고 고쳐 부르고는 어색한지 갸우뚱 했다. 그러나 황하연 소저가 내어주는 야참을 보고 이내 활짝 웃고 달려들었다.
  “그래 공부는 많이 했니?”
  번개돌이가 약식과 강정을 양손에 들고 정신없이 먹는 것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황하연 소저가 물었다.
  “응, 역경(易經)을 다 읽고 육도삼략(六韜三略)을 읽던 참이었어요.”
  “그래, 그래. 영특하기도 하지.”
  “그런데……. 누나?”
  “응? 왜 그러니 번개돌이야?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보렴.”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보다 누이가 해주는 옛날 얘기가 더 좋아요. 헤헤.”
  번개돌이는 등잔불에 붉게 물든 얼굴을 장난스럽게 찡그리며 웃었다. 황하연 소저는 피식 웃고는 손짓을 해서 번개돌이를 불렀다.
  “호호, 다 큰 것 같으면서도 아직 아기구나. 그래, 이리 누이한테 와서 무릎베개라도 배고 이야기를 들으려무나.”
  “헤헤.”
  번개돌이는 손에 쥔 약식과 강정 조각을 입에 구겨 넣고 쪼르르 달려가서 황하연 소저의 치마폭 위에 머리를 얹고 누웠다.
  “그래, 어디보자.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는 해줬던가?”
  “응, 오늘은 낙랑왕자와 호동공주 이야기를 해준다고 했잖아요.”
  “욘석, 엉터리로 기억하는 구나.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겠지.”
  “헤헷.”
  “그래 어디보자, 옛날 옛날에 고구려라는 나라에 호동이라는 왕자가 살고 있었단다. 호동왕자는 일찍 어머니를 잃었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황하연 소저의 고운 목소리가 짙어지는 어둠 속에 가물거리는 등잔불처럼 잔잔하게 이어졌다. 마당에 가득한 어둠 너머로 담장 밖의 벚나무에 가득한 꽃이 희미한 흰 그림자로 비췄다.

7.
  “아이고, 이를 어쩐단 말이지요. 아이고, 어쩌자고 그런 요물단지가 나타나서는…….”
  행랑어멈 초희는 안채 마당에 주저앉아서는 호들갑스럽기도 하고 비통하기도 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마루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던 황하연 소저 역시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행랑어멈, 너무 그러지 말아요. 우리 여인네들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않겠어요.”
  마당 구석에는 지기 시작하는 벚꽃 잎이 쌓여있고 햇살은 화창한데도 두 여인은 그다지 밝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어둡고 서늘하기만 하였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황하연 소저가 힘없이 중얼거리자 넋 나간 듯 지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초희가 벌떡 머리를 들었는데 그 눈에 풀 길 없는 원망이 그득하였다.
  “다행이라고요? 아무리 아씨라도 그런 말을 하다니요. 우리 바깥사람이 온 몸에 피멍이 들고 열이 올라 앓아누웠는데 다행이라니요? 행여나 그런 말씀 어디 가서 하지 마세요. 다른 마을 남정네들도 하나 같이 맞고 까이고 부러졌는걸요. 그리고 아씨도 그렇지요. 그 역신(疫神) 도깨비가 쳐들어와서 황 첨지 어르신까지 놀람병이 들어 누워계시잖아요. 그뿐인가요? 황 첨지 어르신이 아씨 생일날 주려고 준비한 아씨 어머님의 옥가락지까지 가져가버렸잖아요. 그런데도 다행이라니요?”
  “휴, 행랑어멈. 낸들 정말로 맘이 편해 이러겠어요.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기운을 내자는 거지요.”
  하지만 초희는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래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요. 저는 바깥 냥반 병수발이라도 하러 가야겠어요.”
  황하연 소저는 안채 마당을 가로질러 행랑채 쪽으로 가는 초희의 뒷모습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소 잃고 외양간마저 잃을 수는 없잖아요.”
  황하연 소저가 그렇게 중얼 거리며 초희가 사라진 행랑채 쪽을 보는데 행랑채 뒤쪽 그러니까 사랑채 쪽에서 허연 도포를 걸치고 흑오죽(黑烏竹)을 잘게 쪼개 만든 갓을 쓴 중늙은이가 비실비실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님!”
  황하연 소저가 놀라 소리치고는 신발도 신지 않고 버선발로 안채 마당을 가로 질러 중늙은이에게 달려가서 부축을 하였다.
  “아버님, 몸도 불편하신데 어찌 나오셨어요. 의원이 탕약을 드시거든 누워서 쉬시라고 했잖아요.”
  황하연 소저가 중늙은이의 겨드랑이를 두 팔로 받치고는 놀라고 걱정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중늙은이, 곧 황하연 소저의 아비 되는 황금봉 첨지는 기운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마른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냐. 일이 이리 되었는데 어찌 내가 자리만 보전하고 있겠느냐? 다 나의 부덕함 탓이니 행랑아범하고 마을 사람들 다친 것을 돌아보고 조상님 산소에도 찾아 봐야지.”
  “아이고, 아버님. 몸부터 보전하셔야지요.”
  황하연 소저가 그리 말하고는 황 첨지를 사랑채 쪽으로 끌려는데 황 첨지는 기운 없이 늘어져서 황하연 소저의 얼굴을 쳐다보고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아버님도 참 눈물이 어인 말이어요. 농사야 풍년도 있고 흉년도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야 다쳤어도 잘 보살피고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을 왜 운단 말이에요.”
  “아니야, 아냐. 농사 때문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친 것 때문도 아니야. 하연이 너 때문에 우는 것이란다.”
  “예? 저 때문에요?”
  갑작스런 말에 황하연 소저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아 하고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 역신 도깨비가 제 생일 선물로 준비해둔 어머님의 옥가락지를 가져간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저야 아버님이 여지껏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키워주셨으니 따로 선물이 없어도 많은 것을 받았는걸요.”
  황하연 소저는 황 첨지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지 씩씩하게 말하고는 환히 웃었다. 그러나 황 첨지의 기운 없는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졌다. 황 첨지는 힘없이 돌아가는 팔랑개비마냥 연신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아니야. 그 역신 도깨비가 내 방에 쳐들어와서 하는 말이 네 옥가락지를 가져갔으니 이제 너는 자기 신부가 돼야 한다고 이달 그믐밤에 데리러 온다는 구나.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예에?”
  이번만은 황하연 소저도 놀랐는지 큰소리를 내고 하마터면 팔에 힘이 풀려 황 첨지를 떨어뜨릴 뻔 했다. 황 첨지는 비틀하더니 황하연 소저에게 기대서는 처량 맞은 눈으로 황하연 소저의 얼굴을 보고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잠시 황망하고 처연한 표정을 짓던 황하연 소저는 아비의 우는 모습을 보고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여인네 같지 않게 어깨를 폈다.
  “호호호, 아버님도 참. 까짓것 아무려면 어때요. 어차피 여자는 출가외인이라는 데 이 한 몸이야 어디로 끌려가든 구르든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이달 그믐이면 아직 열흘은 시간이 있으니 관군이라도 불러놓고 기다리다가 정 안되면 그저 역신 도깨비를 따라 가면 그만인 것을요. 호호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당하게 말하고는 황 첨지를 부축해서 사랑채로 향하는 황하연 소저였다.
  “황 소저! 하연 누이! 엄마…….”
  황하연 소저가 사라지고 나서 빼꼼히 열린 안채의 문틈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내밀어지고 억눌린 듯 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삐죽삐죽하였다.

8.
  밤하늘 동쪽에 누가 한 입 깨문 부침개 같은 달이 떠오르는데 황 첨지 댁 뒷문에서 목소리를 낮춘 채 부산을 떠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 모습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한 사람의 그림자는 체격이 늠름한 것이 청년이었고 한 사람의 그림자는 몸매가 늘씬한 것이 여인이었다. 청년 그림자는 뒷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여인 그림자는 팔을 벌리고 문을 막아섰다. 청년 그림자가 여인 그림자를 피해 문을 열려하니 여인 그림자가 청년 그림자의 허리를 얼싸안고 버티었다. 이처럼 두 그림자가 소리 없이 실랑이를 한동안 하였다. 마침내 청년 그림자가 여인 그림자의 집요함에 지쳤는지 멈춰서는 입을 열었다.
  “아니, 황 소저. 내가 가지 않으면 어찌 한단 말이오. 정말 역신 도깨비에게 시집을 가도 좋은 게요?”
  “그런……. 그럴 리는 없잖아. 역신 도깨비 따위한테 누가 시집가고 싶겠어? 하지만 마을 남정네들이 떼로 덤비고도 그 꼴이 됐는데 번개돌이, 네가 이렇게 간다고 해서 무슨 수가 생기겠어? 엄한 오기 부리지 말고 관군이 오는 거나 기다리자.”
  “그러니 더 가야지요. 마을 남정네들이 떼로 덤비고도 그리 되었는데 관군들이 온다고 달리 수가 생기겠소.”
  “무슨 소릴! 그러니 가지 말아야지. 여럿이서 못 할 일을 어찌 네가 혼자 하겠단 거니? 그러다 큰 일 난다.”
  “혼자 몸이라 더 편한 것도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긴대야 천하에 나를 아는 사람 없는데 이 한 몸 어찌 되도 대단할 것 없지 않소.”
  그 순간 찰싹 하는 소리가 울리고 청년 그림자, 번개돌이의 모습이 뺨을 부여잡았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너를 키워준 어미가 누군데? 너를 돌봐준 누이가 누군데? 너와 놀아준 동무가 누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번개돌이는 뺨을 부여잡고 잠시 저만치의 어둠을 쳐다볼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뺨이 화끈거리긴 했지만 그보다 가슴이 메여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더 이대로 있을 수 없는 거 아니겠소. 세상 넓다하나 내 사는 세상에는 황 소저 밖에 없고 사람 많다하나 내 아는 사람은 황 소저 밖에 없는데 이대로 황 소저 그대를 역신 도깨비한테 내어주면 나는 그야말로 살아도 산 것이 아니잖소. 이 몸이 비록 세상에 나고 빛을 본지 한 해도 멀고 한 달도 채우지 못했으나 황 소저의 도움으로 여러 공부를 하였으니 꼭 실패하리란 법은 없소. 어떻게든 역신 도깨비를 처치하고 황 소저 어머님의 옥가락지를 찾아오리다.”
  번개돌이가 뺨을 잡았던 손을 떼어 황하연 소저의 손을 굳게 잡고 약속이라도 하듯이 말하였다. 황하연 소저는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번개돌이 네가 정 그렇다면 더는 말리지 않으마. 하지만 너는 안채를 벗어난 일도 거의 없는 데 이 넓은 조선팔도 어디에서 역귀 도깨비를 찾겠다는 거니?”
  “그렇지 않아도 아까 낮에 황 소저가 춘부장 어르신을 모실 적에 사람들 눈을 피해 마루에 앉아 그 고민을 하였소. 마침 하늘에서 까만 새 한 마리 낮게 날았는데 살펴보니 다리 셋 달린 까마귀였소. 이 다리 셋 달린 까마귀가 사랑채 기와에 앉았다가 행랑채 초가에 앉았다가 내 앉아있는 안채 기와지붕 위로 내려앉았다오. 가만 생각해보니 이는 삼국사(三國史)에 나오는 삼족오(三足烏)라는 영물이라 심상치 않았다오. 삼족오가 지붕 위에서 끄륵끄륵 하고 목 메인 듯 답답한 소리를 울다 서쪽으로 날아갔으니 이는 서쪽에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겠소. 굳이 삼족오가 이 집에 와서 알릴 심상찮은 일이 무엇이겠소? 이는 서쪽 어딘가에 역신 도깨비가 숨어 있음을 한울님이 알리시는 것이리라.”
  “아아! 번개돌이, 너는 어찌 허망한 미물이 날고 우는 것을 하늘의 전조로 여기는가. 그러나 너의 마음 이미 굳었으니 여인의 몸으로 내가 무엇을 더 말할까. 그저 어디로 떠돌고 지치는 일이 있더라도 역신 도깨비가 데려가는 그믐 전에는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비춰주려무나.”
  어둠 속에서 황하연 소저의 그림자가 주저앉더니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 머뭇머뭇 번개돌이의 그림자가 망설이다가 황하연 소저의 그림자를 안아 일으키고 그 어깨를 다독였다.
  “그럼 황 소저, 나는 이만 역신 도깨비를 잡으러 가야겠소. 반드시 그놈을 찾아서 단매에 때려잡고 황 소저의 옥가락지를 찾아오리다.”
  “번개돌이야, 잠깐만 기다리려무나. 갈 때 가더라도 채비는 하고 가야지 않겠느냐?”
  번개돌이가 황하연 소저의 어깨를 놓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려는데 황하연 소저가 기다리라 말하고는 안채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번개돌이가 밤하늘의 달이며 별이며 보고 잠시 기다리려는데 행여나 그냥 가버렸을 새라 황하연 소저가 헐레벌떡 다시 뛰어왔다.
  “자, 급한 대로 이거라도 챙겨가려무나.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준비 했을 것을…….”
  황하연 소저가 품에 안고 온 것을 번개돌이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다 무엇이오?”
  “번개돌이 네가 자고 나면 키가 크고 몸이 불어 그간 보퉁이를 이은 천을 옷 대신 두르고 있었으나 이제 집을 떠나면 그러고 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니더냐. 아직 조금 클지 몰라도 네가 다 크면 입히려고 옷을 만들어 두었으니 입고 가려무나. 긴 것이야 접으면 될 것이고 큰 것이야 조이면 될 것이니 입어 보거라.”
  황하연 소저는 먼저 내밀었던 것 중에 고이 접은 옷가지를 번개돌이의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아무리 자신이 키우고 돌봤다하더라도 아무리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하더라도 남정네가 옷 갈아입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는 때문이었다. 돌아선 황하연 소저의 어깨너머로 부스스 천이 떨어지고 옷을 펼쳐 입는 소리가 났다.
  “다 입었소. 딱 맞는 구려.”
  “어디 한 번 보자꾸나. 낮에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달이라도 훤한 보름달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비록 어둡기는 하였으나 달빛을 받고 드러난 붉은 적삼에 붉은 바지를 입은 청년의 모습이 제법 영준하였다. 긴 머리는 여느 총각들처럼 댕기를 땋지는 않았으나 삐죽하니 멋대로 기른 것이 야인(野人) 같기도 하여 번듯한 청년의 외모에 색다른 멋을 더하였다. 황하연 소저가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것을 숨기고는 다른 물건을 번개돌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무명 보퉁이에 싼 짐이었다.
  “이건 급히 싼 주먹밥하고 백설기란다. 그냥 먹으면 목이 멜 테니 우물이나 깨끗한 시냇물을 찾아서 먹도록 하렴. 그리고 객지로 돌다보면 아무래도 부족한 것이 있을 테고 돈이 아쉬울 테니 이것이라도 가져가렴.”
  그러더니 황하연 소저는 소매 깊숙이 뒤지더니 짤랑이는 엽전을 꺼내 번개돌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번개돌이는 손에 쥔 엽전에서 황하연 소저의 온기가 느껴져서 화들짝 놀랬다가 고개를 멀리 돌리고는 손을 꼬옥 쥐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 테니 황 소저는 들어가 보시구려.”
  번개돌이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뒷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황하연 소저가 다시 불렀다.
  “번개돌이야, 번개돌이야. 그리고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무엇이오?”
  번개돌이가 의아하여 묻는 순간 황하연 소저의 그림자가 날래게 움직이더니 번개돌이의 알밤에 딱콩 하고 알밤을 먹였다.
  “세상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점잔을 빼더라도 내 앞에서는 까불까불 살갑게 굴어야지.”
  그리고는 황 소저는 떠나는 번개돌이를 보지 않겠다는 듯이 어두운 마당을 가로질러 등불이 새어나오는 안채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헤헤.”
  번개돌이는 헤프게 웃고는 밤하늘의 달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어둠 속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뒷문 밖을 나서고 마을길을 걸으며 걸음은 점점 가볍고 힘차게 변했고 마침내 마을 밖 논둑을 지날 때는 아예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9.
  다음 날 해질 무렵이었다. 멀리 서쪽에 지는 노을을 잡으려는 듯이 달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삐죽한 머리를 바람에 거칠게 흩날리며 달려가는 늠름한 청년이었다. 번개돌이였다. 한참이나 달리던 번개돌이는 날이 어슴푸레해져서야 멈추어 섰는데 그건 지쳐서가 아니라 산이 길을 막고 서있어서였다.
  진달래꽃 개나리꽃 가지가지 피었는지 울긋불긋 물듯 산은 두 개의 산을 이어붙인 모양으로 봉우리가 두 개였는데 어찌 보면 누워있는 사람의 엉덩짝 같기도 하여 우습기도 하였다. 한번 킥킥 웃은 번개돌이는 산을 돌아갈지 넘어갈지 궁리하였는데 마침 산봉우리가 나눠지는 산턱에 동굴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 표지를 세워 놓은 것이 작게 보여 다가가보니 입구(入口)라고 쓰여 있는 것이었다.
  “옳거니! 이리로 들어가면 반대쪽으로 나갈 수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엉덩이 같은 산에 이런 동굴이 있다니 참으로 미묘한 일이구나.”
  번개돌이가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사실 그 말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인근 사람들은 이 산을 궁둥산이라 부르고 그 동굴을 동고굴(洞苦窟)이라 불렀으니 말이다. 아무튼 간에 번개돌이는 산을 넘어가도 시간이 걸리고 산을 돌아가도 시간이 걸릴 판에 산을 질러가는 동굴길이 있는 것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그러나 몇 걸음도 옮기기 전에 동굴이 너무 어두운 것을 알고는 돌아 나왔다.
  “이거 큰일인걸. 동굴길이 외길이면 다행이지만 중간에 갈림길이라도 있다간 길을 잃고 헤매게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횃불이나 등불을 사러 마을을 찾자니 시간이 걸릴 것 아닌가. 어디보자……. 옳거니! 마침 여기에 차돌바위 두 개가 있으니까 부싯돌 마냥 부딪히며 가면 되겠구나.”
  그리고는 번개돌이는 동굴 입구 옆에 놓여있던 송아지 몸뚱이만한 차돌바위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번쩍 들어 올리는 게 아닌가. 장사도 다시없을 천하장사였다.
  번개돌이가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걸음을 옮기면서 열 걸음마다 바윗돌을 부딪치니 흰 불꽃이 번쩍하고 요란한 소리는 동굴 안을 울렸다. 마치 폭풍우 치던 천둥번개가 날이 개면서 동굴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아니 어떤 천둥벌거숭이 녀석이 이렇게 요란 벅적거리는 게야.”
  동굴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번쩍이는 불빛에 눈이 아플 즈음에 동굴 어느 구석의 어둠 속에서 짜증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마치 겨울바람처럼 차갑고 우물 밑의 물처럼 깊어서 듣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번개돌이는 이 기분 나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일까 알아보려고 연신 바윗돌을 부딪쳐 사방팔방으로 불똥을 튀기며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사방에 희끄무레한 동굴 벽만 보일 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뉘시오?”
  “누군지 알아서 무엇 하게? 킬킬킬.”
  번개돌이가 물었으나 목소리의 주인은 번개돌이를 비웃듯이 음침한 웃음만 터뜨렸는데 동굴 벽에 울려서 가뜩이나 음침한 웃음이 요사스럽게 들렸다.
  “나는 멀리 동쪽에 있는 세기마을 황 첨지 댁에서 온 번개돌이라고 하오. 역신 도깨비를 찾아 가는 길이올시다. 혹시 당신이 역신 도깨비가 사는 곳을 알거든 알려주지 않겠소?”
  “어이쿠, 네놈이 감히 대왕님을 찾는단 말이냐?”
  “당신은 역신 도깨비를 아시오? 그가 황하연 소저의 어머님이 남긴 옥가락지를 뺏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그믐날에 황 소저를 데려간다 하니 내가 그를 찾아 옥가락지를 돌려받고 단매에 쳐 죽이려 한다오.”
  “킬킬킬. 어리석기 짝이 없는 천둥벌거숭이로구나. 너 같은 게 감히 대왕님을 죽이겠다고? 어림없는 수작을 부리기 전에 이 동굴귀신이 상대해 주마. 킬킬킬.”
  기분 나쁜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기분 나쁘게 웃었다. 사방이 음침하고 요사스런 웃음소리로 가득하고 싸늘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이쿠, 이제 보니 이놈은 사람이 아니라 동굴귀신이었구나.”
  번개돌이가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웃음소리는 높아지고 바람은 싸늘해져서 번개돌이의 눈썹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킬킬킬, 꽁꽁 얼어 죽어라.”
  동굴귀신은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이 보이는지 마냥 신나서 소리쳤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번개돌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함을 질렀다.
  “이 놈! 감히 어디서 요망한 귀신의 술법을 부리느냐. 황 소저가 지어준 적삼과 바지를 입고 있는데 이깟 찬바람 조금 부는 것이 간지럽기나 할 것 같으냐.”
  아닌 게 아니라 번개돌이가 정신을 차리고 옷고름을 움켜쥐니 가슴에서 불길이 일듯 온몸이 따듯해지는 것이었다.
  “에잇! 네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
  동굴귀신은 분하다는 듯이 소리쳤는데 술법의 위력을 높였는지 동굴 안에 서리가 내려앉았다가 매서운 바람에 눈처럼 흩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번개돌이는 얼굴이 쓰라린 찬바람에도 고개를 당당히 들고 서있었다. 심지어는 오히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이마에 땀방울까지 맺히는 게 아닌가.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동굴귀신이 오히려 놀라자빠질 노릇이었다.
  “아니 동장군한테 훔쳐 배운 술법이 이 녀석한테만은 통하지 않으니 이게 웬일일까?
  동굴귀신이 당황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이번에는 술법을 부리느라 힘이 빠져선지 그 목소리가 울리지 않고 동굴 안의 어둠 한쪽에서 또렷하게 들렸다. 번개돌이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들고 있던 차돌바위 하나를 동굴귀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집어 던졌다. 차돌바위가 쌩하고 날더니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점차로 매서운 바람이 줄어들더니 동굴은 다시 어둡고 조용해졌다.
  “죽었는가?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죽었는가 보군. 그나저나 바위 하나를 던져 버렸으니 어떻게 불똥을 일으켜 동굴을 빠져나간다지.”
  번개돌이는 새로운 문제를 놓고 어둠 속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손가락을 튀기며 옳거니 하고 소리쳤다.
  “그래 바위 하나가 남아있으니 둘로 쪼개서 부딪히면 되겠지.”
  그리고는 번개돌이는 바위를 집어 들어 한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내리치는 것이었다. 쩡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바위가 대번에 쪼개지자 번개돌이는 만족스럽게 쪼개진 바위 조각을 양손에 나눠 쥐고 부딪혀서 불똥을 튀기며 어두운 동굴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갈 길이 먼데 요망한 것 때문에 시간만 버렸구나. 늦으면 늦을수록 황 소저의 걱정만 늘어날 것이니 서둘러야지.”

10.
  번개돌이는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환한 빛에 눈을 찌푸렸다. 어느 새 날이 밝고 아침나절이 된 것이다. 번개돌이는 손에 쥐고 있던 차돌바위 조각을 버렸는데 분명 동굴에 들어갈 때는 송아지 몸뚱이만한 것이었는데 둘로 쪼갰다고는 하나 그 크기가 조막만큼 작아져 있었다. 밤새 억센 힘으로 부딪혀댔으니 바윗돌이 귀퉁이가 떨어지기를 거듭해서 그런 것이다. 차돌바위가 부서져 조약돌이 되었는데 번개돌이의 손이라고 멀쩡하지는 않았다. 손아구가 찢어져 피가 나고 다시 피가 말라붙어 손에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었다.
  “이거 손이라도 씻어야겠구나. 어디 물이 없을까? 그러고 보니 배도 출출한데 황 소저가 싸준 주먹밥하고 떡을 먹어야겠구나. 어디 물이 없을까?”
  번개 돌이는 손에 난 상처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고는 산길을 내려갔다. 산길을 내려온 번개돌이 앞에 잡초가 우거진 들판이 펼쳐졌다. 번개돌이가 허리 위로 올라오는 풀잎을 헤치고 걸음을 옮겼는데 마침 들을 가로지르는 얕고 넓은 하천이 나왔다.
  “옳거니 마침 잘 되었다. 손도 씻고 밥도 먹어야지.”
  번개돌이는 하천으로 다가가 물이 맑은 것을 보고 기뻐 말했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손을 씻으려 하는 데 맑은 물에 흐릿하게 사람의 모습이 비췄다.
  “아니, 저 사람 누구일까? 삐죽삐죽한 머리카락이며 붉은 옷이며 나와 닮았는데 코밑에 턱밑에 수염이 가뭇한 것이 젊은 아저씨로구나. 저 사람 누구일까? 아하! 저 사람이 나로구나. 동굴에서 밤을 새는 사이 또 나이를 먹은 게로구나.”
  번개돌이는 물에 비친 것이 자신의 모습인 것을 알고 중얼거렸다. 손을 모아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시고 허리에 메었던 보퉁이를 풀어 주먹밥을 꺼내는 번개돌이의 얼굴이 그리 편치는 않았다.
  “큰일이구나. 이렇게 빨리 나이를 먹는대서야 다시 돌아가도 황 소저가 못 알아보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참말로 누가 만들었는지 주먹밥 맛이 꿀맛이로구나.”
  그렇게 번개돌이가 걱정도 하고 감탄도 하며 정신없이 주먹밥 하나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떡 한 조각을 꺼낼 때였다. 하천의 건너편에 두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번개돌이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고 보았는데 참으로 이상한 모양을 한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난쟁이였는데 앞머리에서 정수리까지 반질반질한 반(半)대머리였다. 남은 머리를 뒤통수에서 상투를 틀었다. 눈이 작고 대문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 작은 키에 팔이 긴 것과 어우러져서 간사한 원숭이처럼 보였다. 또 한 사람은 난쟁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는데 특히나 어마어마한 뚱보라 키가 더 작아보였다. 옆으로 퍼진 길이가 위아래 길이랑 비슷해보였으니 말이다. 이 키 작은 뚱보는 하천 너머에서 얼핏 보기에도 얼마나 지저분한지 옷이 새카만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술 맞게 생긴 얼굴에도 땟국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번개돌이가 떡을 한 입 먹으며 쳐다보고 있자니 이 두 괴상한 사람들이 무엇인가 일을 벌이기 시작하였는데 그 일이란 것도 도무지 뭐하려고 하는지 알기 힘들었다. 원숭이 같은 난쟁이는 하천의 물을 손으로 퍼서 들판에 뿌리기 시작했고 키 작은 뚱보는 그 옆에서 짧고 굵은 다리로 쿵쿵거리며 땅을 다지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고 참으로 이상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구나. 논도 아닌데 물은 왜 퍼 나르고 밭도 아닌데 땅은 왜 다진단 말이냐. 궁금해서 뭐하는 건지 알아보지 않고는 발걸음을 못 떼겠구나.”
  그렇게 말한 번개돌이는 남은 떡 조각을 훌떡 입에 넣고 보퉁이를 챙겨 허리에 매고 하천을 건넜다. 얕은 물을 첨벙첨벙 건너는 번개돌이의 모습이 빤히 보일 텐 데도 원숭이 같은 난쟁이와 키 작은 뚱보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여보시오. 나는 멀리 동쪽에 있는 세기마을 황 첨지 댁에 사는 번개돌이란 사람이올시다. 역신 도깨비를 잡으러 가는 길인데 당신들이 하는 일을 보니 뭐하는 건지 궁금하구려. 좀 알려주지 않겠소?”
  번개돌이가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원숭이 같은 난쟁이와 키 작은 뚱보는 흘끗 번개돌이를 돌아보았으나 그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한 명은 물을 퍼 땅에 뿌리고 한 명은 쿵쿵 거리며 땅을 다지는 것이었다.
  “이보시오.”
  괴상한 사람들에게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상한 번개돌이가 삐죽삐죽한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엄한 목소리를 냈다. 그제야 괴상한 두 사람은 하던 일을 멈추고 번개돌이를 쳐다봤다. 번개돌이가 큰소리를 낸 것이 무안해서 헛기침을 하는데 원숭이 같은 난쟁이가 입을 열었다.
  “아니 거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시무니까. 바빠서 대답을 못하지 않스무니까.”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라 그리 바쁜 게요?”
  원숭이 같은 난쟁이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키 작은 뚱보를 돌아봤다. 키 작은 뚱보가 심술 맞은 볼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원숭이 같은 난쟁이는 입을 열었다.
  “나는 물귀신 나까무라 이무니다. 그리고 저분은 땅귀신 왕서방 이무니다.”
  그제야 번개돌이는 이 괴상한 작자들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동굴귀신도 쳐 죽인 번개돌이가 아니던가. 또 역신 도깨비를 잡으러 가는 마당에 겨우 물귀신, 땅귀신 정도야 무서울 리 없었다.
  “그래서 너희 귀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건가?”
  “나와 다른 물귀신들은 이곳 조선에 사는 사람들한테서 말하는 법이며 옷 입는 법이며 배울 수 있었으무니다. 그렇지만 이곳 조선 사람들이 우리 물귀신들에게 사람을 잡아먹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하니 그것만큼은 배울 수 없으무니다. 이대로 두면 우리 물귀신들은 조선 사람들을 엄한 선생으로 모시고 착하게 살아야할 테니 참을 수가 없으무니다. 그래서 조선 땅을 물에 잠기게 하려고 물을 퍼 나르고 있으무니다.”
  번개돌이가 깜짝 놀라서 집어던질 돌이 있나 찾으려는데 이번에는 원숭이 같은 난쟁이 옆에 있던 키 작은 뚱보, 그러니까 물귀신 나까무라 옆에 있던 땅귀신 왕서방이 입을 열었다.
  “나와 다른 땅귀신들은 남의 땅을 뺏어 먹는 게 일이다 해. 그런데 이곳 조선 사람들은 단단히 버티고 땅을 안준다 해. 또 우리가 다른 땅 뺏어먹으려고 해도 조선 사람들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무섭다 해. 그래서 조선 땅을 다져서 물 밑에 잠기게 하려고 한다 해.
  번개돌이는 화가 잔뜩 났지만 아무리 찾아도 들판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 바윗돌은 고사하고 자갈 하나 없었다. 하지만 번개돌이는 돌 대신 주먹을 굳게 쥐고 두 귀신의 머리를 내려쳤다.
  “이따이! 무슨 짓이무니까.”
  “왜 때리냐 해. 아프다 해.”
  두 귀신은 갑자기 번개돌이가 때리니까 성이 나서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성이 났어도 번개돌이가 화난 것만큼이나 할까. 번개돌이는 벼락같이 달려들어서는 한 손에는 물귀신 나까무라의 멱살을 한 손에는 땅귀신 왕서방의 멱살을 잡았다.
  “이 못된 귀신들! 조선 사람들이 선한 마음으로 사람답게 살도록 가르치고 못된 짓을 못하게 막아주면 감사하여 받들어 모셔도 부족할 판에 흉한 마음을 먹고 요사스런 짓을 벌이다니. 내 오늘 너희 두 귀신에게 버릇을 단단히 들려주리라.”
  “어림 없으무니다.”
  “택도 없다 해.”
  “어디 어림이 있는지 택이 있는지 한 번 당해봐라.”
  번개돌이는 한손에 하나씩 양손에 두 귀신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려서 고함을 쳤다. 두 뒤신은 발버둥을 치더니 저주를 늘어놓았다.
  “날 때리면 나중에 조선 사람들은 나라도 잃고 말도 잃고 이름도 잃을 거무니다.”
  “흥, 조선 사람들은 너희 물귀신이 뺏어가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말을 되찾고 이름을 되찾을 거다.”
  물귀신 나까무라가 교활한 원숭이 같은 얼굴로 저주했지만 번개돌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물귀신 나까무라가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자 심술 맞은 얼굴로 땅귀신 왕서방이 저주의 말을 뱉었다.
  “날 때리면 나중에 조선 사람들의 조상도 뺏고 땅도 뺏겠다 해.”
  “흥, 너희 땅귀신은 조선 사람들의 조상님도 뺏지 못하고 땅도 뺏지 못할 거다.”
  그리고는 번개돌이가 땅귀신 왕서방의 투실한 엉덩짝을 걷어차니 붕 날아가서 하천 복판에 모로 박혀버렸다. 다시 번개돌이가 물귀신 나까무라를 매다 꽂으니 반질반질한 반대머리부터 나막신을 신은 발목까지 쿵하고 땅에 거꾸로 박혀버렸다. 땅귀신 왕서방은 물 밖으로 나온 땅땅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허우적대다가 꼬로록 물을 먹고 늘어졌다. 땅 밖으로 나온 물귀신 나까무라의 나막신이 깔딱대다 부르르 떨더니 꼼짝도 안했다.
  “우리 조선은 너희가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땅을 다져도 사라지지 않을 거고 우리 조선 사람들은 너희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결국 이겨낼 거다.”
  번개돌이는 씨근덕거리던 숨을 몰아쉬고 손을 툭툭 털고는 땅에 박히고 물에 박혀 죽은 두 귀신을 뒤로 하고 들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11.
  번개돌이는 들판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느긋한 양반걸음으로 걸었으나 점차 힘차고 당당한 장군걸음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새를 쫓는 농군처럼 범을 쫓는 사냥꾼처럼  달음질쳤다. 번개돌이가 달리는 들판은 허리만한 허리까지 풀잎이 무성하더니 점점 푸른 것이 사라지고 누렇게 죽은 풀들로 바뀌었다. 해가 꼭지를 지나고 서쪽으로 기울 때쯤에는 하나둘 마른 가시나무들이 나타났다. 번개돌이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늦춰 가시나무를 피해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는데 땅에는 시커먼 쥐와 구렁이만한 지네들이 기어 다녔고 가시나무 가지에는 주먹만한 거미들이 기어 다니며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해는 점점 흐릿해지는 데 참으로 흉물스런 들판이었다.
  “아, 큰일이구나. 험한 들은 한참이나 더 가야할 텐데 벌써 해가지려 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마을을 찾아서 횃불이나 등불을 사둘 것을…….”
  그러나 오후 내내 가로질러 온 험한 들판을 이제 와 되돌아간다는 건 무리였다. 그저 험한 길이 어서 끝나기만 바라며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번개돌이가 가시나무 가지를 피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사이 희고 검은 것이 반반인 달이 떠오르고 사방은 파란 어둠에 잠겨들었다. 바스락거리던 쥐들도 지네도 거미도 자러 갔는지 가시나무 들판엔 번개돌이의 걸음 소리만 작게 들릴 뿐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저만치서 작은 불빛이 반짝 반짝 하더니 이내 주황색 작은 불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아하, 어느 집이 부싯돌로 등잔불을 밝혔구나. 마침 다행이다. 오늘 밤은 저 집에 부탁하여 쉬어갈까.”
  하여 번개돌이는 가시나무를 피하고 가지를 젖혀가며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불빛은 작은 초가집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 작은 단칸 초가집이라 한두 사람이 겨우 살 법하였다.
  “어흠, 실례합니다만 주인 어르신 계십니까?”
  번개돌이는 먼저 크게 헛기침을 하여 인기척을 내고 집주인을 불렀다. 창호문에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이내 목소리가 들렸는데 여인의 목소리였다.
  “뉘신지요?”
  “지나가던 길손입니다. 밤이 깊고 길은 험하여 쉬어갈까 합니다. 손을 들이기 어려우시면 부엌이나 마루에라도 좋으니 쉬어갈 수 있겠습니까?”
  잠시 안에서 대답이 없더니 창호문이 스르르 열리고 뽀얀 얼굴에 새카만 머리를 틀어 올린 여인이 내다보았다. 볼은 통통하고 턱은 뾰족했고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붉은 것이 여간 미인이 아니었다.
  “어찌 손을 박하게 대하겠습니까. 여인 혼자 사는 집이라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안으로 드시지요.”
  여인이 말하는 모습이 또한 다소곳하기도 하고 요염하기도 하여 뭇 사내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번개돌이는 황하연 소저를 떠올리며 고개를 털었다.
  “어찌 외간남자가 규방에 함부로 발을 들이겠습니까. 그저 바람이나 피하고 몸이나 뉘일 수 있으면 족합니다.”
  번개돌이가 정중히 거절하자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번개돌이를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입도 가리지 않고 하얀 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깔깔 웃었다.
  “호호호, 점잖은 분이셨군요. 하지만 새벽나절부터 독사와 독충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밖에 있으면 위험하지요. 손을 위험한 곳에 재울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드시지요.”
  여인은 한 차례 웃고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재차 안으로 들기를 권했다. 사정이 그렇다하고 또 저처럼 권하는 것을 계속 거부하는 것도 무례하다 싶어 번개돌이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금실 은실로 화려하게 꽃이 수놓인 자주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번개돌이에게 윗목을 내어주고는 아랫목에 치맛자락을 추스르고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번개돌이가 고개를 숙이고 삐죽삐죽한 머리를 긁다가 여인을 쳐다보니 여인은 빤히 번개돌이를 보고 있다가 눈을 마주치고는 화사하게 웃는 것이었다. 스물 서넛은 되었을까. 원숙한 미녀가 눈웃음을 치며 바라보는데 가슴이 떨리지 않을 남정네는 나라님을 모시는 내시라도 아니고는 없을 것이었다. 번개돌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돌릴 겸 무어라도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부인께서는 이런 외지고 험한 곳에 사시게 되었습니까?”
  “호호, 부인이라니요. 동생이라고 편히 불러주시어요. 성은 구(九)요 이름은 외자로 미(尾)라고 합니다. 구 동생이나 구미 동생이라고 불러주시어요.”
  번개돌이는 남세스럽다 말하려다가 문득 자신이 오후 나절에도 또 나이가 들었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이 스물 서넛이라면 번개돌이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오라비뻘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이었다.
  “구미 동생이었구려. 나는 멀리 동쪽에 있는 세기마을에 사는 번개돌이라고 한다오.”
  구미라는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번개돌이라는 이름을 나직이 되뇌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 사는 곳이야 어딘들 다르겠습니까?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과 편히 지낼 수 있으면 험한 곳에 살아도 무릉도원인 셈이지요.”
  구미라는 여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번개돌이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허나 구미 동생은 혼자 살지 않소? 마음 맞는 사람이라 함은 인근에 사는 사람이 또 있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사실 어제만 해도 이 단칸방에 저와 첫째남편, 둘째남편, 셋째남편이 같이 살았답니다. 대감님들이 삼처사첩을 들이는 것만이야 못해도 나 역시 세 남편을 거느리고 사는 마나님이었지요.”
  번개돌이는 여자가 남편을 여럿 거느리고 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고 또 그것을 그리 당당히 말하는 것이 당황스러워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구미라는 여인은 말을 이어갔다.
  “그러던 것을 어제 낮에 일하러 갔던 첫째남편이 돌을 맞고 죽어 오늘 아침에야 돌아오더니 오늘 낮에 들판 동쪽에 있는 하천에 간다고 나간 둘째남편과 셋째남편도 돌아오지를 않는군요.”
  번개돌이가 황당한 가운데 구미의 말을 들어보니 여인이 말한 첫째남편은 동굴귀신인 모양이고 둘째남편과 셋째남편은 물귀신과 땅귀신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구미라는 이 여인도 귀신이나 그 비슷한 요물이 아니겠는가. 번개돌이가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왜 그러시지요?”
  “아니오. 자리 밑에 뭔가 찔리는 것 같아서.”
  번개돌이는 변명을 하고 조금 옆으로 옮겨 앉았다. 여인은 아리따운 얼굴을 갸우뚱 했으나 이제 번개돌이에게 그 모습은 전혀 예쁘장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번개돌이 오라버니는 어딜 가시던 건가요?”
  구미는 눈웃음을 치면서 바싹 다가앉아 물었다.
  “며칠 전에 삼족오가 서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서쪽으로 가면 찾는 사람을 만날 것 같아 여행하는 중이라오.”
  번개돌이가 급한 대로 두루 뭉실하게 이야기를 하자 구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가락을 꼽아보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중얼하였다. 마치 숫자를 계산하는 것도 같고 점을 보는 것도 같은 모습이었다.
  “삼족오는 영물이라 삼족오가 날아간 방향으로 간다보면 반드시 찾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삼족오의 세 다리는 위험과 고비를 나타내는지라 세 번은 어려운 일을 겪어야 하겠어요.”
  구미라는 여인은 역술에 재주가 있었는지 번개돌이의 이야기를 풀어 얘기한 것이었다. 번개돌이가 그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배운 주역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구미는 번개돌이가 자신의 말을 믿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활짝 웃고는 번개돌이에게 더 바싹 다가앉았다. 분내음이 번개돌이의 코를 찔렀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꼭 세 번이나 어렵고 험한 일을 겪어야겠어요? 여기서 나랑 살면 어떨까요? 마침 나도 남편 셋을 한 번에 잃고 외롭던 참이었거든요. 우리 백년가약을 맺고 만리장성을 쌓아보아요.”
  그러나 번개돌이는 여인의 세 남편이 모두 귀신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여인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섬뜩할 뿐이었다. 번개돌이가 앉은 채로 주춤주춤 물러서서 입을 열었다.
  “혹시 구미 동생의 첫째남편이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분이 아니오?”
  “그렇지요. 이제 보니 오라버니도 점복이나 관상을 할 줄 아시나 봐요?”
  “역시 그랬군. 그렇다면 혹시 둘째남편이란 분은 키가 작고 앞머리가 없지 않소?”
  “호호, 이제 보니 반쯤 엉터리 점쟁이군요. 그 사람은 셋째남편이에요.”
  “그럼 뚱뚱한 사람이 둘째 남편이겠구려.”
  “맞았어요. 족집게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맞추는 군요. 그런데 무얼 보고 맞춘 거예요? 관상을 보고 맞춘 것 치고는 너무 정확하고 역술로 풀어냈다고 해도 알려준 것이 없는 데 신통하기도 하지. 잠깐만, 혹시…….”
  물러나는 번개돌이에게 바싹 다가오던 구미가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얼굴에서 점차 웃음이 사라졌다. 이내 얼굴이 점점 싸늘해지고 눈초리가 찢어지더니 앙칼진 목소리로 묻는 것이었다.
  “혹시 네가 그들을 직접 본 것이냐?”
  번개돌이는 이때다 하고 구미의 어깨를 떼밀었다. 구미가 벌러덩 뒤로 넘어가면서 화려한 치맛자락이 펄럭였는데 하얀 다리 사이로 탐스런 꼬리 여러 개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제 보니 구미가 바로 구미호(九尾狐)로구나.”
  번개돌이는 깜짝 놀라서 문을 박차고 어두운 들판으로 달려 나갔다.
  “이놈, 게 섰지 못하겠느냐.”
  뒤에서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쫓아왔지만 번개돌이는 멈추지 않고 하늘의 달을 보고 대강 서쪽을 가능하고 뛰었다. 여인의 목소리는 앙칼지게 이어지다 캥캥 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되더니 멀어졌다. 아마 본 모습으로 둔갑하여 쫓아오려는 모양이었지만 번개돌이의 날랜 달음질을 쫓아오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12.
  다음날 아침나절이었다. 구미호가 포기하지 않고 쫓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밤새 달린 번개돌이는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를 악다물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다보니 멀리 가시나무 들판이 하늘과 맞닿는 곳에 지평선을 따라 반짝이는 것이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저것은 강인가?”
  번개돌이가 강을 생각하고 다가가는 데 번쩍이는 것은 점점 가까워지며 커다란 물로 비추고 그 가운데에 까만 점이 하나 보였다.
  “저것은 집인가? 설마 구미호의 초가집은 아니겠지?”
  번개돌이는 집으로 생각되는 그 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커다란 물은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고 집은 높아졌다.
  “아! 저것은 강이 아니라 세상 끝에 있다는 바다로구나. 그런데 저 집은 누가 사는 집일까? 대궐 같이 큰 것을 보면 구미호의 초가집은 분명히 아닌데 임금님은 한양에 계실 테니 누가 사는 건지 모르겠구나.”
  번개돌이가 가까이 가서 보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위로는 층층이 삼 층으로 지어졌고 옆으로는 방이 얼마나 많은지 세기마을이 들어갈 만 해보였다. 번개돌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얼빠진 표정으로 높은 담장을 따라 집 주위를 돌았는데 결국 활짝 열린 대문 앞에 도착하였다.
  “계십니까?”
  번개돌이가 물었으나 대문 안으로 보이는 논밭이 몇 개는 들어갈 만한 마당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 크고 좋은 집이 빈 집이란 말인가?”
  “하하하, 빈 집일 리가 있겠는가. 주인이 여기 있는 데.”
  이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기와집 안에서 덩치 큰 사람이 나왔다. 이 사람이 보통 덩치가 큰 것이 아니었는데 범 가죽 여러 장을 이은 옷이 겨우 몸뚱이를 가릴 뿐, 털이 숭숭한 팔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 팔다리도 어지간한 집의 기둥처럼 굵었다.
  “지나가던 길에 집이 너무 크고 좋아 저도 모르게 실례했습니다.”
  번개돌이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하하하, 나를 찾아 왔으면서 실례일 건 또 무엇이 있는가?”
  번개돌이가 그 말에 고개를 들고 큰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이마에 뿔 두 개가 솟아 있고 손에는 승냥이 이빨 같은 가시가 돋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어이쿠, 그대는 도깨비로구나! 역신 도깨비가 그대였구나!”
  번개돌이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하하하, 그렇다. 내가 바로 역신 도깨비다. 그대는 천둥새와 벼락범의 자식 번개돌이지? 그대가 나의 세 부하 귀신들을 물리치고 이곳에 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부모는 천둥새나 벼락범이 아니라 세기마을 황하연 소저이긴 하지만 내가 동굴귀신, 물귀신, 땅귀신을 죽인 번개돌이이기는 하오.”
  “그래 이제 너는 나를 찾아왔으니 무엇을 하려 하느냐?”
  “그야 당연히 황 소저의 옥가락지를 돌려받고 당신이 황 소저를 업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오.”
  번개돌이는 역신 도깨비의 커다란 덩치와 거친 외모, 흉악한 방망이가 무섭긴 하였으나 물러서지 않고 소리쳤다.
  “하하하, 과연 맹랑한 놈이로다. 너는 내가 저 옛날하고 옛날에도 처용의 부인을 뺏은 건 알고 있느냐? 처용도 막지 못한 나를 네가 감히 막겠다는 거냐?”
  “모르오. 나는 모르오. 그대는 정말 위험하고 강해 보이오. 그러나 그대가 천년만년 살아왔더라도 그저 못된 짓만 해왔다면 무슨 소용 있겠소.”
  “어리석은 것, 정녕 관을 봐야 울 놈이로다.”
  역신 도깨비는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는데 떡 벌어진 입안에 빨간 불꽃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번개돌이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한 발 나가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번개돌이의 부릅뜬 눈에 벼락같은 푸른빛이 번뜩였다. 역신 도깨비는 가시 방망이를 휘두르려고 높이 쳐들었다.

13.
  그믐밤의 세기마을 이었다. 하늘엔 달도 별도 없었으나 마을에는 여기저기 횃불을 밝히고 화톳불을 피워 붉은 불빛이 가득하였다.
  “아함.”
  “이놈 졸지 말고 똑바로 경비를 서지 못할까.”
  포졸 하나가 하품을 하는 것을 마침 순찰을 돌던 포교가 보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포졸은 엄마야 하고 놀라서 입을 다물다가 혀를 깨물었다.
  “쯧쯧, 민초들이 잡귀에게 시달리는 데도 나라의 녹봉을 받는 네놈이 감히 태만하단 말이더냐.”
  포교는 혀를 차고 화를 냈다. 어깨에 걸린 시위를 메긴 활이며 허리에 찬 검이며 등에 맨 화살 통이 어우러져 늠름한 모습이었다. 포졸은 지은 죄가 있으니 뭐라 변명도 못하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웬 놈이냐!”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역신 도깨비란 놈이 왔나보구나.”
  포교는 어깨에 걸린 활을 내려 손에 쥐고 고함이 들린 마을 어귀로 달렸다. 횃불을 크게 피워놓은 마을 어귀에는 포졸들 여럿이 삼지창을 엇갈려서 한 인물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이놈, 어딜 감히 들어오려 하느냐.”
  “나는 어서 가야 한단 말이오. 제발 들여보내 주시오.”
  “어림없는 소리! 오늘 밤은 아무도 마을에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하라는 명령이시다.”
  “그럴 수는 없소. 시간이 없단 말이오. 난 황 첨지 댁의 황하연 소저를 만나야 한단 말이오.”
  그 인물은 허연 머리를 짐승처럼 삐죽삐죽 발꿈치까지 기른 데다 역시 허옇고 삐죽삐죽한 수염이 얼굴에서부터 지저분한 가슴팍까지 내려와 있어 마치 하얀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그 인물이 포졸들과 실랑이 하는 것을 지켜보던 포교는 황하연 소저의 이름이 나오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소리쳤다.
  “그놈이 역신 도깨비다! 그놈이 역신 도깨비야! 포졸들은 뭐하는 게냐. 놈이 요술을 부리기 전에 쳐 죽이지 않고.”
  그리고는 포교 자신이 먼저 들고 있던 활에 낼름 화살을 메겨 날렸다. 화살은 그 인물의 어깻죽지에 정확히 박혔다.
  “엄마야! 이놈이 역신 도깨비였구나. 우리들을 속이고 마을로 들어가려는 수작이었구나. 에잇!”
  포졸들도 놀라서는 삼지창을 찌르고 육모방망이를 휘둘렀다. 우당탕 맞고 푹푹 찔려서 그 인물은 맥없이 비실비실 쓰러졌지만 이내 바닥을 기어 마을 안쪽으로 기어가려 하는 것이었다.
  “지독한 요괴로구나! 무엇하는 게냐 놈의 목을 베고 팔다리를 끊어라.”
  포교가 역신 도깨비로 보이는 그 인물이 온몸에 피 칠을 하고도 꿈틀대는 지독함에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그때였다.
  “잠시 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 사람은 역신 도깨비가 아니에요.”
  마을 안쪽에서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서 막 그 인물의 목을 큰 칼로 내려치려던 포졸들이 놀라 멈추었다. 포졸과 포교들이 돌아보니 마을 안에서 불빛에 붉게 물든 어여쁜 처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뛰어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옷고름도 제대로 묶지 않았고 꽃신도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황 소저, 위험하니 나오지 말라하지 않았소.”
  포교가 그 처자를 알아보고 꾸짖는데 그 처자는 포교를 지나쳐 땅바닥에서 꿈틀대는 인물에게로 달려갔다.
  “번개돌이야! 번개돌이야!”
  그 처자, 황하연 소저는 주저앉아서 온 몸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 흘리는 인물을 끌어안았다. 그랬다. 그가 바로 번개돌이였다. 비록 머리는 하얗게 새고 얼굴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되었지만 그가 바로 번개돌이였다.
  “아아, 번개돌이야.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돌아온 거니. 이런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왜 떠난 거니.”
  황하연 소저가 고운 얼굴이 눈물에 젖는 것도 모르고 피에 젖은 노인 번개돌이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노인 번개돌이의 눈은 반쯤 감기고 탁하였는데 꿈틀꿈틀 손을 움직여 황하연 소저의 고운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 주었다. 피에 젖은 옥가락지였다.
  “아아.”
  황하연 소저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번개돌이가 흘린 피가 두 사람의 주변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번개돌이의 숨이 점차 작고 가늘어졌다.
  “아아 번개돌이야, 이토록 짧고 허무하게 살다니 다음 생에 다시 나거든 그때는 오래오래도록 같이 살자꾸나.”
  황하연 소저가 울먹이며 말했는데 다 죽어가던 번개돌이의 얼굴에 죽기 전의 마지막 생명의 빛이 돌아왔다.
  “아니오, 아니야. 나는 사람이 다시 나는 것을 믿지 않소. 또 만약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내 이 생을 당신과 보냈고 당신을 위해 보냈는데 길든 짧든 다른 생을 바라겠소. 나는 바라는 것이 없으니 그대는 이제부터 행복하게 살고 또 누군가와 다정히 사시오.”
  그렇게 말한 번개돌이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황하연 소저가 채 터져 나오지 않는 비명으로 꺽꺽대고 번개돌이의 식어가는 몸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한 순간 사람들 머리 위로 푸른 불꽃이 너무나 짧게 순간적으로 그러나 더 없이 밝게 빛나고 사라졌다.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황하연 소저를 대신하여 울듯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14.
  그리하여 이야기는 끝났던 것이다. 그 후로 황하연 소저가 누구에게 시집을 갔는지 말았는지는 모르겠다. 또 번개돌이의 친부친모인 김만덕이와 초희가 다른 자식을 낳았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후로 마을 어귀 당산나무 옆에 작은 나무가 하나 더 자라더니 그 가지가 당산나무와 이어붙었다고 한다. 이를 연리(連理)라 하여 연리지(連理枝)니 연리목(連理木)이니 하기도 한다는데 경기도 어느 구석에 찾아보면 세기마을이란 마을 입구에 오래전에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 두 개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그 나무의 흔적이다. 일설에는 을사(乙巳)년이 지나고 왜놈들이 베었다고도 하고 한국 전쟁 때 중공군의 박격포를 맞고 쓰러졌다고도 하는데 지금에 와서 확인할 길이야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단 말이다.

덧글

  • 2007/03/06 08: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3/06 22: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3/06 23: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3/06 23:3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3/06 23: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zzzz 2007/07/25 15:52 # 삭제

    zzzzzz
  • 2007/07/25 15:52 # 삭제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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