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야기 by 귀우혁

여기 한이야기가있다.
왕은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왕관을 쓰고 흑곰의 털가죽 망토를 걸치고 신화와 영웅이 부조된 커다란 왕좌에 몸을 푹 눕히고 앉아있다. 머리는 설산의 정상처럼 하얬지만 노인은 아니었다. 현명한 고민이 만들었을 이마의 주름과 용감한 결단이 만들었을 입가의 주름, 그것들이 깊게 패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노인이라기에는 아직 일러보였다. 왕좌의 옆에는 화려한 검집에 꽂힌 검이 기대 세워져있고 왕은 너른 홀의 중앙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선 수명의 광대들이 연극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홀의 가장 중앙에는 낡고 지저분한 나무통이 놓여있었고 여러 광대들은 그 주위에 둘러 서있었다. 그리고 가장 볼품 없게 생긴 반백의 광대 한 명이 그 나무통이 왕좌라도 되는양 나무통에 엉덩이를 걸치고 거만하게 퍼질러 앉아 있었다. 이 광대는 개털가죽을 누빈 망토를 걸치고 깨진 그릇을 왕관삼아 머리에 쓰고 있었다. 그는 광대의 왕이었다.
광대의 왕은 흘끗 왕의 눈치를 살폈다. 왕은 그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라 나는 무엇인가?
광대의 왕이 주변의 광대들에게 물었다.
-오오 왕이시여 당신은 우리의 왕입니다. 세금을 쥐어짜고 가혹하게 매질하는 왕입니다. 아내와 딸을 후궁으로 들이고 아비와 아들을 병사로 내모는 왕입니다.
소년소녀로 보이는 어린 광대들이 외쳤다.
-오오 왕이시여 당신은 우리의 왕입니다. 축사의 가축과 과수원의 과일과 들판의 곡식을 거둬가며 우리에게 멀건 죽과 빼빼 마른 쥐고기를 베푸는 왕입니다.
농부의 복장을한 청년 광대들이 외쳤다.
-오오 왕이시여 당신은 분명한 왕입니다. 신께서는 왕외의 누구에게도 그런 일을 허락치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분명 신이 내린 왕. 우리의 폭군, 지옥의 통치자.
무엇을 흉내낸 것인지 깨진 안경을 걸치고 표지가 없는 낡은 책을 높이든 늙은 광대가 굽은 허리를 치들며 외쳤다.
-하하하! 그렇다 나는 왕이다! 내가 왕이다!
광대의 왕은 그의 주변에 고개를 숙인 광대백성들을 거만하게 둘러보더니 볼품 없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큰 소리로 껄껄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목을 움츠리고 측은한 표정을 왕좌의 왕에게 지어보였다.
-왕이시여! 이 미천한 것이 왕의 진노를 산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이다. 내가 청한 공연 아닌가?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그대를 나와 같은 왕으로 대할 것을 약속하겠다.
-예, 예. 저희를 왕성으로 부르실 때도 약속하셨죠. 그저 왕께서 불편하실까봐 걱정이 되서 그렇습죠.
광대의 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헤헤 웃었다. 그모습을 보고 왕은 잔잔하지만 기품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광대왕이여. 보라. 나는 그러한 왕인가? 폭군이고 압제자인가?
그 말을 들은 광대의 왕은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마디가 굽은 두손을 들어 급히 저었다.
-오! 물론 아닙습죠! 왕께서는 결코 폭군이나 압제자가 아니죠. 외적을 몰아낼 때는 백전백승으로 국경을 넓히셨으며 부패한 귀족들이 빼았았던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주고 초야권을 폐지하셨으며 도로와 수로를 정비하셨지요. 학교를 지어 천것의 아이들도 글을 배우도록하였고 사제들이 약초학과 의술을 배워 사람들을 돕도록 독려하셨지요. 주점에선 떠돌이 음유시인들이 사라진 왕실의 검을 찾아 모험하셨던 일을 영웅시로 노래하더군요.
-오래 전, 왕자 때의 일이군. 하지만 결국 검은 찾지 못했다네.
-하지만 모든 모험에서 승리하고 왕실의 검을 대신할 수 있는 성검을 찾아오셨지요. 모험은 전설이 되고 승리와 치세는 역사로 기억되어 세상에 퍼지니 멀리 대륙 반대편 산맥 너머의 악명 높은 여왕, 광인기사단과 총포병단의 주인조차 폐하를 두려워한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런가? 나는 그다니 듣지 못했던 이야기로군.
-왕이시여. 저희 같은 천것들이야 산으로 들로 헤매며 소문을 양식삼아 살다보니 이런일에는 왕성의 학자나 관리들 보다 낫답니다.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그럼 다시 극을보여주지 않겠나?
-물론이지요. 이제 겨우 시작되었습죠. 에헴
하더니 광대의 왕은 바로 으스대는 모습으로 통나무 위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자아 왕의 행차시다! 나의 왕국을 돌아봐야겠다! 준비를 하라!
광대왕이 외치자 삼삼오오 늘어서있던 다른 광대들이 분주히 이리저리 움직이고 차림새를 바꾸고 부산을 떨었다.
숲이 그려진 낡은천을 광대 청년 둘이 잡고 넓게 펼쳤고 늙은 광대는 뿔을 단 것 같은 작은 수레를 비실비실 끌어다 그 앞에 세웠다. 수레에는 정돈되지 않은 노란단발머리에 장난기가 반짝이는 갈색눈, 꽃잎같은 핑크색의 볼이 통통한 광대소녀 한 명이 고개만 내밀고 타고 있었다. 소녀는 왕과 눈이 마주치차 수레 안으로 머리 끝까지 숨겼다가 다시 슬그머니 눈을 내밀고 왕을 바라봤다. 왕이 그 모습에 인자하게 미소 짓자 소녀는 작은 손을 흔들었다. 왕이 손을 들어 마주 흔들려는 찰나에 남자 광대 한명이 수레를 끌고 무대의 한쪽 끝으로 가버렸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밤에 소끌고 가는 저들은 누구인가?
무대의 반대쪽 끝에 등장한 광대의 왕이 나무사이에 숨어서 외쳤다.
-저들은 아비와 딸 같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광대왕의 뒤에 서있던 다른 광대들 중 한명이 대답했다. 더러는 작대기를 든 것이 병사역할을 하는 듯 했고 더러는 낡은 책이나 잉크가 마른 깃펜을 들고 있어서 신하역할을 하는 듯 했다.
-아비는 어린 딸을 소에 태우고 간다네. 안전하고 따뜻한 집과 어미가 만들었을 맛난 저녘식사를 향해서.
광대왕은 외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비틀어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채로 수풀을 헤치며 그들 부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굽은 어깨와 구부정한 등으로 굽실굽실 잰 걸음이었다.
-아버지, 저기에 왕이 있어요! 망토를 두르고 금관을 쓴 왕이 우릴 쫓아오고 있어요!
소를 흉내낸 수레에 타고있던 소녀가 뒤를 돌아보고 외쳤다.
-아이야, 저건 그냥 나무 그림자란다.
아비는 흘끗 돌아보더니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지고 다시 수레를 끌고 느린 걸음을 옮겼다.
-귀여운 아가야, 내게 오려무나. 나를 즐겁게 해다오. 싫다고 하면 네가 탄 소를 뺐어갈 테니.
-아버지, 왕이 위협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낮게 으르렁대는 폭군의 외침이?
-진정하렴 우리 딸, 겁낼 필요 없단다. 저건 그냥 바람에 수풀이흔들리는 소리란다.
-귀엽고 사랑스런 아가야, 나랑 갈 수 밖에 없단다. 말을 잘 들으면 후궁전으로 갈테고 말을 안들으면 시녀로 험하게 부릴 거란다. 아니, 자꾸 고집을 피우면 정원에 키우는 사자들의 먹이로 던져버릴 수도 있지.
-아버지, 절 지켜주세요. 왕이 제 팔을 잡고 끌고 가려해요.
아비는 흘끗 돌아보다가 나무그늘에서 나온 왕이 아이의 팔을 잡아끄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오! 맙소사!
-뭐라고?
아비의 비명을 들은 광대의 왕이 두눈을 부릅뜨고 아비를 노려보았다.
-이런 곳에서 위대하신 폐하를 뵈어 황송무지렁이라는 것입죠. 어찌 이런 촌에 왕림하셨는지요? 촌장을 불러올깝쇼? 길안내가 필요하십니까? 시장하시다면 식사를 준비하지요. 농사에 쓰던 녀석이라 고기가 질기겠지만, 원하신다면 소고기를 올리겠습니다.
-으흐흐, 내가 뭘 원하는지 정말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오! 왕이시여! 이 어린 것이 무슨 쓸 데가 있다고요. 배운 것 없이 천하고 농가의 자식이라 못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이야 그저 어린 탓에 귀여워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딸을 내놓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오! 왕이시여! 이 천 것이 감히 왕의 명령을 거부하겠습니까. 그저 왕께서 못난 여식을 데려가셔서 실망하실까봐 그런 것입죠. 이런 못난 계집아이보다 왕께서 맘에 들어하실 처자를 알고 있습니다.
-호오?
광대왕은 고개를 모로 비틀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 눈빛에 농부는 딸을 등 뒤로 끌며 굽실거렸다.
-이 숲의 반대편에 혼자 살고 있는 처자가 있습지요. 마을 사람들하고 뒤섞이는 일이 거의 없이 혼자 살고 있는데 어쩌다 한 번씩 마을로 나오는 날엔 온 마을의 남정네들이 그 주변을 기웃대기 일쑤입니다. 그 처자에대해 말하자면 눈처럼 하얀 얼굴에 한 밤의 강물 처럼 검은 머리, 별빛처럼 반짝이는 두눈 거기다 웃음소리는 새의 울음 같지요.
-호오오!
광대왕은 비틀었던 고개를 바로 했는데 농부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아버지! 지금 공주님을 저 대신 팔려는 거에요?
농부의 등 뒤에 숨어 눈만 빼꼼 내놓고 있던 딸이 농부의 옷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가만 있거라. 네가 끌려가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대신가야 하지 않느냐? 세상이란 원래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기 마련인 법. 더구나 그녀는 진짜 공주도 아니고 마을사람도 아니니.
농부는 왕의 눈치를 살피며 낮게 말했다.
-하지만...
-어헛! 너는 가만히 있으라니까. 왕이시여 저희 같은 천 것들에게 시간 쓰지 말고 어서 가시지요.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처자가 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면 나와 어울리지 않겠느냐. 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너와 네 딸은 물론이고 이 주변의 온 마을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야. 하하! 가자.
광대왕은 껄껄 웃으며 숲의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왕의 부하들도 그 뒤를 따르려 했는데 왕이 그중 몇몇에게 은밀히 눈빛을 보내고 손짓을 하자 병사 둘이 무리에서 빠져나와 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아빠...
왕과 무리들이 사라지자 소녀는 아비의 뒤에서 나와 탄식하듯 말했다.
-됐다. 더는 말할 것도 없으니. 돼지공주에겐 미안하지만 이 아비에겐 네가 중요하단다. 그만 돌아가자. 엄마가 늦는다고 걱정하겠구나.
농부는 한 손으로 소를 가장한 수레를 끌고 다른 손으로 소녀를 끌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였다.
-흐흐 아직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엔 이르지.
나무 그늘에서 병사 둘이 나오며 으스스하게 웃었다.
-누구요? 당신들은 병사들? 왕과 함께 간 것 아니었소? 무슨 일로....
-흐흐 왕께서는 욕심이 많은 분이시거든.
병사들은 나무로 된 창칼을 높이들었고 농부는 윽 하는 소리를 내고 쓰러졌다.
-아빠! 안돼!
소녀가 비명을 지르자 병사하나가 거칠게 소녀의 입을 틀어막고 끌고갔다. 소녀는 병사에게 끌려가다 왕과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끗했다. 그 모습에 왕이 피식웃자 이내 다시 버둥대는 연기를 하며 무대 밖으로 나갔다. 바닦에 쓰러져 있던 농부도 슬그머니 일어서서 몸을 굽힌 채 무대 밖으로 나갔다.
-제법 재밌구나. 하지만 저 폭군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걸. 그에겐 좋은 스승이 없었던 걸까?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이 저처럼 비뚫어진 것일까?”
왕은 무대가 준비되는 것을 기다리며 중얼거리고는 왕좌에 기대세워진 성검을 한차례 쓸어만졌다.
그사이 준비를 마친 것인지 누더기를 기워만든 짐승의 털옷을 걸치고 더러는 머리에 부엉이 깃을 꽂은 광대들이 모여섰다.
-한 낮의 태양을 보면 그 얼굴이 아니라 눈 부신 빛만 보이 듯이, 어둠 또한 그 얼굴은 검은 그림자에 덮였으나 빛의 부재가 아니라 스스로 오롯이 실재하니. 빛이 높은 곳에서 오듯이 어둠은 깊은 곳에서 온다네. 깊은 골짜기 깊은 동굴 깊은 숲 깊은 눈과 마음
보아라, 거짓 웃음 가득한 세상에 진실한 어둠이 떠오른다.
여러 광대들의 외침이 막의 바뀜을 알렸다. 숲을 꾸민 무대의 끝에서 광대왕이 굽실거리는 걸음으로 등장했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거칠게 휙휙 좌우를 살피는 것이 먹이를 찾는 맹수의 모습이었다.
짐승으로 꾸민 광대들은 더러는 짐승의 모습을 벗고 병사의 모습으로 또 더러는 반 쯤 벗거나 혹은 그냥 짐승의 모습 그대로 광대왕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한 처자가 등장했다. 빛바랜 붉은 통치마를 입고 긴 검은 머리는 파란 끈으로 질끈 묶었다.얼굴엔 검은 보석같은 두눈이 반짝였고 웃고있는 붉은 입술은 하얀 치아를 살짝 드러내고 있었다.



저 돼지를 잡아와라! 돼지통구이를 먹고싶구나!
돼지를 반려동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줄은 몰랐군.

나는 왕, 광대의 왕이라오. 광대들은 내가 짜낸 이야기를 따라 웃고울고 춤추고 노래하고 태어나고 죽는다오. 보통은 번잡한 시골 장터나 곡식을 거둔 들판에서, 때론 모험가와 용병의 주점에서, 가끔은 이렇게 왕성이나 귀족가의 저택에서 무대가 펼쳐진다오. 무대엔 나의 세계가 펼쳐지고 또 세계는 나의 무대가 되니 나는 왕, 광대의 왕이라오.

빛이 높은 곳에서 오듯이 어둠은 깊은 곳에서 온다네

인간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가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지요?

인간의 의식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신의 준엄한 교리도 세간의 미담도 닿지 않는 그 깊은 그늘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그것은 바깥에서 스며들어 고인 것인가 안에서 솟아 벗어나지 못하여 쌓인 것인가?

오 지극히 선한 나의 왕이여! 저 하늘 높은 곳에 오르사 만백성 눈부신 그 모습 담지를 못하네.
오 지독한 폭군 나의 왕이여! 이 땅 만방을 틈없이 덮으사 만백성 매서운 그 손길 피하질 못하네.
오 황금의 잔은 차고 넘치네. 황금의 잔은 차고 넘치네.

뮤지컬 사의 찬미 감상(170813) by 귀우혁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김우진 : 김우진에서 떠오르는 인물상은 이육사, 윤동주, 이상입니다. 일제시대의 지식인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무대에서 배우분의 연기에 따라서 나타나는 모습도 이 세 문인상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나합니다.
우선 김우진을 둘러싼 환경을 보겠습니다. 일제의 침략+근대화를 완전히 이루지 못한 고루한 조국+부담스러운 부루주아 출신+부모가 정해준 정혼자+일본인 애인(기억에는 교수의 딸이라는 언급이 이전 공연에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습니다.)+사내가 정해준 결말. 이러한 내적외적 환경에 대해 사내는 이육사처럼 적극적으로 생명력을 불태우고 저항하거나, 윤동주처럼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갈등하거나, 혹은 이상처럼 철저하게 내면으로 침잠합니다.


2. 윤심덕 : 찰라를 사랑하는 심덕은 팜므파탈 혹은 신여성의 전형을 이루었습니다. 결코 상대가 내민 악수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주도적으로 악수를 하는 모습 같은 것이 그런 심덕을 잘 보여주겠죠. 하지만 심덕이 이러한 외적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우진과의 관계에서 순수성 혹은 감추었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생각해볼만한 점은 과연 심덕이 순수하게 우진만을 사랑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실제 역사 속의 여러 스캔들은 극 외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극 안에서 심덕과 사내의 관계는 무엇인가 생각해볼만 합니다. 단순히 우진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사내의 수작이었을까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곳에 대한 사내의 선망이나 질투였을까요? 나약하고 소극적인 우진과 대비되는 사내에 대한 심덕의 흔들림일까요? 죽음처럼 차가운 사내에 대한 심덕의 거부감이었을까요? 우진이 심덕을 떠난 수년 사이 심덕과 사내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관계가 이어졌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모두 사내가 사의 찬미의 결말(죽음)을 위해 조작한 일일까요?


3. 사내 : 사내가 어떤 인물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명운이라는 이름, 호시노 아카시(8월 4일 혹은 별의 증거)라는 일본식이름으로 볼 때 또한 사내가 사의 찬미라는 극본을 통해 인물들의 (과거를 알고 있고) 현재와 미래를 통제하고 강제한다는 것을 볼때 사내는 운명, 그것도 죽음에 이끌리는 운명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내의 명확한 정체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의 몫으로 둔다고 해도 극 안에서 나타나는 사내의 면모는 짚어볼까합니다.
그 하나는 정체불명의 괴인이지만 분명한 인간으로서의 사내입니다. 다른 하나는 겉으로는 인간이지만 인간을 벗어난 초월자 혹은 신화의 영역의 사내입니다. 또 사내를 실재로 보느냐 비실재로 보느냐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말이지만... 결국 사내에 대한 해석의 범위에 대한 문제겠지요.
또 사내가 우진과 심덕을 어떻게 보고 생각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진과 심덕을 다른 사람들(아마 그가 죽음으로 이끌었던 이들)과는 다르다고 좀 더 길게 보고 싶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우진의 생명력이나 찰라를 사랑하는 심덕의 불꽃같은 모습이라는 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우진과 심덕을 남다르게 본 사내의 마음과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사내가 심덕에게 자꾸만 던지던 추파가 우진을 몰아붙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진짜로 사내가 심덕에게 끌렸던 것은 아닐까요? 또 친구 이상을 원하던 우진과의 관계 역시 그런게 아니었을까요? 전 사내가 우진에게도 키스를 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어차피 사내는 남과여 노와소로 규정되지 않으므로)
여담으로 심덕이 자신을 쏘도록 유도할 때 사내가 부른 노래중 새벽별의 노래-라는 부분과 사내의 이름을 생각하면 사내가 별과 관련된 존재가 아니냐... 즉 새벽별의 악마, 루시퍼가 아니냐 하는 의심도 할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무대의 시작과 끝이 어둠 속의 사내로 끝나는데... 극은 무대 인사 뒤 우진이 홀로 사의찬미 대본을 던져두고 나간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즉 지금까지 사의 찬미라는 극 안의 인물이었던 우진이 극 밖으로 나간다는 트루먼쇼 식의 진짜 엔딩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생각을 붙이자면 왜 우진은 심덕과 함께 퇴장하는 것이 아닌 혼자 퇴장하는가?(현실로 나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까지 모든 일은 사의 찬미를 집필한 우진의 내면의 일로 그는 작품의 집필을 마치고(내면의 갈등을 마치고) 현실로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실 사의 찬미는 잘 짜여진 것 같으면서도... 배우의 해석과 연기에 따라 관객에게 전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하고 세밀하게 들어가면 불친절할 정도로 해석의 여지를 잔뜩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좋은 곡들과 배우들의 열연이 이런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이겠죠.

건담UC 팬픽 by 귀우혁

'슥삭 뽀드득-'
남자는 기체 표면에 푸른색 유성 매직으로 크게 그려진 번개모양의 그림을 지웠다. 낙서라기보다는 무언가 도안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놓은 형태였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지금은 리무버를 적신 걸레에 닦여나갈 뿐이었다. 정비반이 분주하게 오가는 도크의 한 구석에 독한 휘발성 냄새가 퍼졌다.
"카자마 소령님! 왜 그걸 지우세요? 소령님 정도면 퍼스널 마크 정도는 괜찮지않습니까?"
아마도 이 그림을 그렸을 터인 금발의 정비 장교가 기술사관들 사이에서 나오며 물었다.
"..."
남자, 카자마 소령은 정비장교쪽으로 얼굴을 돌려서 눈을 한차례 마주치고는 고개를 저었다. 동양계의 얼굴은 선이 고운 편이었지만 단정치 못한 머리와 며칠이나 면도를 하지 않은 것인지 거친 피부 위로 빳빳하게뻗친 짧은 수염들로 타고난 생김이 주는 장점을 뭉개고 있었다. 동안이긴 했지만 얼굴 곳곳에 슬슬 자리를 잡으려는 잔주름을 보면 적어도 삼십 중반은 훌쩍 넘겼음직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비장교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자 카자마는 자신의 왼손으로 오른쪽어깨쪽을 툭툭 쳤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짙은 회색의 파일럿슈츠 어깨에 새겨진 것은 녹색과 베이지색 청색이 섞인 둥근 도안과 노란색의 ECOAS라는 글자였다.
"하, 물론 소령님 부대가 특임대란 건 알고 있지만... 그보다 소령님도 그자가 그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정비장교는 낙인처럼 새겨진 엠블렘을 보고 한숨을 터뜨리고는 말을 돌렸다.
"..."
카자마는 정비장교의 질문에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정비장교는 카자마의 강한 부정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 붉은 기체의 움직임을 봤잖습니까? 그리고 그 가면을 쓴 모습이나 목소리..."
"아뇨. 그건 절대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때 그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 두 사람은 푸른 빛 넘어로 사라졌으니까요"
"그런..."
정비장교는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때 함내 사이렌이 울렸다. 정비장교와 카자마 대위는 벽에 붙어있던 상황용 디스플레이를 봤다. 다른 도크에서 출격하고 있는 하얀 기체의 모습이 화면에 비추고 있었다. 일각수를 닮은 뿔이 이마에 돋아 있는 기체였다.
"NTD라... 망령에 사로잡혀있는 기분이군..."
카자마는 하얀 기체의 출격장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망령? 붉은 망령 말입니까?"
함께 화면을 보던 정비장교가 다시 물었지만 카자마는 이번 물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겨 그의 기체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정비장교는 카자마 대위가 콕핏트에 들어가고 가슴의 해치가 닫히는 것을 보며 한 차례 어깨를 으쓱하더니 돌아섰다. 그리고는 도크의 콘트롤 룸에 들어가 유닛의 사출 시퀀스를 시작했다. 분주하게 기술사관들이 물러나자 진공차폐벽이 내려오고 캐터펄트가 움직여 유닛을 사출 위치로 이동시켰다.
'우웅-' 메인 제네레이터가 가동을 하며 기체 전체가 낮게 떨렸다. 카자마는 서브 모니터에 출력되는 기동상황의 체크를 마치고 전면의 메인모니터를 주시했다. 거대한 격벽이 열리고 검은 우주가 드러났다. 영혼을 삼키는 듯한 깊은 어둠이었다.
"푸른 우주란 말이지?"
통신회선도 열려있지 않건만 카자마는 물었다. 딱히 누군가의 대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푸른 머리 소녀가 보던 풍경을 그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뿐이었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가벼운 압박감이 전신에 밀려들었다. 어둠이 쏟아져들어왔다. 기체가 사출된 것이다. 남자는 숨을 들이 쉰 채로 조종간을 단단이 쥐었다. 이내 압박감은 사라지고 벨트에 묶인 몸에 부유감이 느껴졌다. 넬 아가마의 유사중력 권역에서 이탈한 것이다.
"여기는 에코 제로, 에코팀은 응답하라!"
남자는 통신채널을 열었다.
"에코 원, 삼기 올 클린!"
"에코 투, 삼기 올 클린!"
"에코 쓰리, 삼기 올 클린, 파이널!"
통신채널에서는 그의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이 에코팀원들의 회신이 쏟아졌다.
"에코팀 올 클린! 넬 아가마에 전한다. 에코팀은 현재시간 18시를 기하여 작전 구역으로 이동하여 경계임무를 펼치겠다."
카자마는 넬 아가마와의 회선을 열고 보고를 했다. 본래라면 그들의 지휘는 부대장인 다구자 중령에 의한 것이어야겠지만 강습작전중에 중령 자신과 대부분의 특전단이 사망한 탓에 잔여 MS대와 지원대는 카자마의 지휘 아래 공조의 형태로 넬 아가마에 편입된 것이다.
"그럼 뒤를 부탁할게요!"
공용회선에서 들린 것은 앳된 소년의 목소리였다. 메인화면에는 일각수의 머리를 지닌 풀아머 상태의 하얀 기체가 멀리 작은 달팽이처럼 보이는 콜로니빌더로 향하는 모습이 비췄다. 그 뒤로는 청회색의 제스타 세대가 호위하듯 따르고 있었다.
"소년 네가 열려는 상자 안에 담긴 것은 미래인가? 아니면 또 다른 망령인가..."
남자는 화면속에 흰 점으로 멀어지는 기체를 향해 중얼거리고 조종간을 움직였다.
"에코 제로에서 전한다. 레드 존으로 이동 삼기 일조로 산개! 옐로 존까지 수색정찰을 실시한다!"
그의 지시에 반응하듯 보조 모니터에서는 아홉개의 노란 점이 셋씩 그룹을 지어 그의 좌우로 펼쳐져 이동을 시작했다. 남자는 MS의 두부를 좌우로 움직여 그 모습을 메인모니터로 쫓았다.
탁한 갈색을 띤 짙은 회색의 기체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두부의 메인카메라를 담은 고글형 센서 위로 별도의 센서가 탑재된 바이저를 장비했고 흉부에는 추가장갑을 갖춘 독특한 MS들이었다. 개중에 한 유닛이 이쪽의 움직임을 감지 했는지 그를 향해 팔을 뻗어 매니퓰레이터를 움직였다. 사람이 었다면 엄지를 추켜 세우는 모습이었겠지만, 병기인 MS에 그런 동작 까지는 학습시키지 않은 탓인지 무척 어색한 모습이었다.
에코 팀은 그를 중심으로 작전지역에 입체적인 교차선을 그리며 수색정찰을 시작했다. 그는 교차선의 중심점에 위치해서 에코팀원들의 유시계탐색 보고와 파편 같은 레이더기록을 토대로 사령탑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카자마 자신의 탐색 정보와 에코팀이 보낸 정보가 복합되어 표시되는 디스플레이에는 바로 얼마 전까지 난전을 벌였던 소뎃츠키와 연방 그리고 넬아가마의 MS의 잔해들이 소운석들과 섞여 무수한 작은 점으로 빛났다.
"마리다... 마리다 크루스 중위였던가..."
카자마는 아이카메라에 잡히는 잔해 사이로 마리다 중위가 최후로 남겼던 푸른 빛의 잔영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몇 번인가 소년이 일각수 건담을 타고 뉴타입의 재능을 보여줬지만, 파란 머리 소녀가 떠오르지는 않았었다. 아니 소년만이 아니라 저 아무로 레이가 액시즈 쇼크 때 보여주었던 빛도 압도적인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마리다 중위가 남긴 빛의 잔영은 파란 머리 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인데...
"뉴타입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는 건가..."
카자마는 상념을 떨치며 다시 탐색정보의 디스플레이를 확인했다.
치열했던 난전의 흔적으로 미노프스키 입자 농도가 짙어져 에코팀이 보내는 탐색정보에는 적지 않은 음영들이 존재했다. 지속적인 탐색으로 음영을 지우고는 있었지만 탐색정보의 갱신에 필요한 시간을 생각하면 결국 사각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넬아가마의 브라이트 함장은 이런 사각을 통해 연방이나 소뎃츠키의 후속부대가 넬 아가마 혹은 라프라스의 상자가 있다는 메가라니카를 타격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때문에 카자마의 에코팀이 소년이 상자를 회수할 때가지 수색정찰을 펼칠 것을 요청했던 것이고...
"라플라스의 상자가 개봉되고 일이 마무리되면 사이드3에 들러봐야겠군. 오랫만에 맛 없는 빵이나 먹어야 겠어..."
카자마는 중얼거리고는 피식 웃었다. 원체 말이 없는 편이라 연방의 벙어리라고 놀림 받기도 하지만 그런 그도 가끔은 옛전우들을 떠올리고 혼잣말 정도는 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경고음과 함께 탐색화면의 메가라니카의 광점이 붉게 물든 것은.
"여기는 에코원, 무슨 일인가?"
"에코 세븐, 메가라니카 쪽에서 교전이 있는것 같습니다. 식별신호는... 트라이스타입니다!"
역시 브라이트 함장의 우려대로인 것인가
"적은? 레빌인가? 소뎃츠키..."
"아닙니다! 대위님, 트라이스타 둘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무슨!"
기체를 탈취 당한 것인가? 하지만 호위 임무중인 그들이 기체에서 내렸을리가 없다. 배신? 이제 와서?
"에코원에서 에코팀에 전한다 3기 1조의 현재 체제를 수색 대형에서 강행 대형으로 바꾸고 메가라니카로 이동한다. 넬 아가마 들었는가?
"여기는 넬 아가마, 이쪽도 후속 부대를 준비하겠다. 무리한 교전은 삼가고 적의 식별과 유니콘 건담의 백업을 부탁한다."
"에코팀 들었는가?"
"라져!"
에코팀원들의 응답이 겹쳐서 들리고 탐색 화면 위의 파랗게 빛나는 점들이 메가라니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인 모니터에는 까만 우주의 어둠 속에서 작은 빛무리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카자마 역시 팀원들의 뒤를 쫓아 기체를 움직였다. 제네레이터가 작동하며 기체가 낮게 진동했고 주변의 풍경들이 밀려나가 시작했다. 붉게 노랗게 보이는 먼 곳의 몇개의 행성들, 소운석들, 기체의 잔해들...
선두의 삼기와 그 뒤의 좌우 각 삼기의 탁한 갈색 기체들이 유시계 화면에 들어왔다. 에코팀원들의 기체였다. 탐색센세를 모두 가동시켜 빛의 띠를 두른 것 같은 형상 모습. 카자마는 그 후위에 위치하기 위해 기체의 속도를 올렸다.
"대장 어서 오십시오!"
"상황은...!"
카자마가 팀원들의 후위를 거의 따라잡으며 물어보던 중이었다. 선두의 기체가 붉은 빛줄기에 궤뚫린 것은.
"무슨! 전기 긴급 산개!"
"대장 세시방향입니다"
카자마의 지시와 거의 동시에 에코팀원들은 회피기동을 하며 흩어졌다. 그 와중에 대원 한명이 적 위치를 식별해냈다.
"무슨!"
거기에 있는 것은 이전의 전투에서 소년의 유니콘에 반파된 보라색의 기체와 이를 호위하듯 둘러싼 다섯 대의 기체였다. 잘보면 제복을 입은 듯한 회색의 기체 두대에서 앵커가 뻗어 반파된 보라색 기체에 연결되어 있었다. 예인 중이었던 듯 했는데 보라색기체의 한팔이 에코팀원들을 향해 뻗어있었다. 그 팔 끝에는 매뉴퓰레이터 대신 거대한 포신이 붙은 실드가 달려있었다. 포신의 끝에 열원 반응이 감지되는 것을 봐선 예인 중이던 기체가 사각에서 에코팀을 발견하고 사격을 한 모양이었다.
"멍청한... 그렇게까지 싸우겠다는 건가!"
먼저 사격을 한 건 유리하겠지만 저 상황에서 제대로 전투가 가능할 리 없다. 에코팀이 지나가길 사각에 숨어서 기다릴 수도 있었을텐데, 이것이 지온의 망령인가.
"제길, 스테판의 몫이다!"
팀원중 누군가가 짐승이 으르렁 대는 것 같은 소릴 지르며 사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미노프스키입자의 영향으로 인한 유시계 전투란 것이 보통 그렇듯 명중률은 좋지 못해서 오히려 저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고 아군을 혼란 시킬 뿐이었다.
"로드릭! 그만두고 팀원들과 진로를 맞춰라! 사격은 그 다음에 화망을 갖추고..."
"으아악!"
카자마는 최대한 빨리 팀원들을 수습하려했지만 한 발 늦었던 것일까. 메인스크린이 붉게 물들고 누군가의 단말마가 통신을 타고 퍼졌다. 탐색화면에 비치던 각각 세 개의 푸른 점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삼각형 중 한 삼각형의 모서리가 깨지듯이 지워졌다.
“제길...”
카자마는 저도 모르게 욕을 뱉고는 탐색화면의 반대쪽 끝에 떠오른 여섯 개의 붉은 점을 노려봤다.
폭발의 섬광이 빠르게 사그라 들고 메인화면에는 흩어져 회피기동을 하며 화망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팀원들의 뒷모습들이 비췄다. 개중 몇 대는 직격은 피했지만 피탄을 한 것인지 움직임이 어색했다.
“대장! 놈들이 보라돌이를 빼돌리고 있습니다!”
메인화면 저편에서 보라색의 기체와 앵커로 연결된 두기와 그들을 엄호하는 한 기가 반대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에코팀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서인지 세기의 회색 기체는 남아서, 진지를 구축하듯 포지션을 잡고 에코팀쪽을 향해 교차로 장거리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피기동을 하면서 사격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정지자세에서 회피기동 하며 반격하는 대상을 사격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황이 유리하지 않은 것은 기습으로 동료가 죽은 탓에 에코팀원들이 혼란된 때문이었다. 더구나 멀어지기 시작한 보라색기체를 쫓아 복수하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도 그런 혼란을 부추기고 있었다.
빗나간 사격들이 소행성의 파편들을 부수고, 전장에 흩어져있던 유닛의 잔해들을 다시 한 번 불태웠다. 누군가가 빔의 피격 데미지를 줄이려고 뿌린 것인지 알루미늄 채프들이 전투의 불빛을 반사하여 검은 우주에 빛의 띠를 그렸다. 지시를 통해 팀원들의 화망을 좁히고 회피기동의 진로를 조정하느라 바쁜 카자마였지만 저도모르게 의식의 한편에 빛의 띠가 파고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누구지?"
그순간이었다. 메인화면에 비추던 3기의 적기 중 한대가 붉은 섬광에 물들었다.
"알리시하! 역시 이쁘다니까!"
"시끄러, 카민스키!"
울림이 좋은 저음이 섞인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무선 너머로 들렸다. 에코팀의 홀일점인 여성 파일럿 알리시하였다.
귀환하면 포상이라도 건의해야겠군. 어차피 라플라스 건이 마무리되어야지나 수여될테지만... 하고 카자마는 생각하며 팀원들의 현황을 점검했다. 3조 9기 중 두 대가 로스트, 남은 7기중에서도 3기는 피탄된 것인지 붉은 경고가 기체표시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대장, 놈들이 도망가려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벌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럴 수는 없지. 알리시하, 카민스키 우전방으로 수평기동하며 사격한다!”
“하라쇼! 거스빠진 카자마!”
“버나드, 알렉스는 상전방으로 수직기동하며 사격한다!”
“오케이! 캡틴 카자마”
메인 화면에서 네기의 기체가 둘씩 나뉘어 이동하는 것을 보며 카자마 자신도 전방을 향해 기체를 가속하기 시작했다.
소매장식의 회색기체 두 대는 양쪽으로 나뉜 에코팀의 진로에 견제사격을 하며 역추진으로 후퇴하다가 뒤늦게 카자마의 기체를 발견했다. 급하게 두 줄기의 사선이 휘어져서 어둠 속에 빛의 궤적을 그렸다. 그 궤적은 지선으로 다가오는 카자마에게 이어졌다.
"대장!"
누군가의 외침이 통신 너머로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 외침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이니 카자마의 기체는 미묘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도저히 직선비행 중이었다고 믿기 어려운 예리한 각도로 수차례 진로를 바꿔 빔의 궤적을 피해냈다.
"역시 푸른번개! 그래도 너무 사람 놀래키지는 말라구요!"
메인화면을 주시하던 카자마는 피식 힘 빠진 웃음을 짓고는 트리거를 당겼다. 그의 기체 앞에서 푸른 선이 직선으로 뻗어 그를 향해 총신을 겨누고 있던 기체와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붉은 폭염.
카자마는 멈추지 않고 직선비행의 가속을 높이며 동료의 폭발에 흔들리는 두번째 기체를 향해 조준을 옮겼다. 하지만 그가 트리거를 당기기도 전에 두번째 기체의 좌측에서 사선으로 푸른 빛줄기가 몸통을 관통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체 역시 붉은 폭염에 휩싸였다.
"쳇, 카민스키인가..."
누군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차는 소리가 무선 너머로 들렸다.
"어떡하죠, 대장?"
통신너머로 누군가 물었다. 교전으로 시간을 버린 만큼 추적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냐는 뜻이었다.
"아니, 추적한다. 짐덩어리를 달고 멀리 가지는 못했겠지."
잃어버린 대원들에 대한 복수심 같은 것은 아니었다. 에코즈 같은 특임대에 동료애는 어울리지 않았다. 카자마 자신또한 오랜 군 경험을 겪으며 사람의 생사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게된지 오래였다. 그저 놓쳐버린 저들이 소년이 라프라스의 상자를 회수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불안요소를 배재하려는 것이었다. 결코 복수심에서 나온 판단은 아니었다.
"알리시하와 카민스키는 남아서 론도벨에 회수 될 때까지 파손기와 팀원들을 지키도록. 버나드와 알렉스는 나와 같이 간다."
잡다한 파편들이
전투의 여파로 미노프스키 입자가 옅어진 것일까. 공용회선으로 감도가 낮은 무선을 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이 붉게 물드는 것과 함께 기체의 진동이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것이 그의 기체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었다. RX-0 시리즈 이전의 테스트 기체로 특정 조건하에서 무버블프레임에 의한 기체의 가변확장과 출력상승 및 반응속도 개선... 그리고 그 트리거 역활을 위해 기체에 숨겨져 있던 것은 그가 예전 모르모트부대에서 겪었던...
"EXAM!"
카자마는 메인모니터에 점멸하는 붉은 글자를 보고 외쳤다.


One night in Ivan-Kupala 140712 by 귀우혁

One night in Ivan-Kupala(Ivan-Kupala is a Slavic carnival between spring and summer.)

A man walks up mountain road. His legs are thick as an oak tree and tough as an ash tree. With legs' moving, arms are pitched as like two serpents' fighting. Though his chest is wide and thick as a stone wall, back is bent roundly and head is dropped deep. Overall, his appearance is like a dog who lost in fighting.
His name is Igor without first or last name. The old witch takes him when he was a baby. And she named the baby just Igor.
Igor moves his feet quickly but mountain is too high. So He can not reach to middle of mountain till the sun close to horizon. the sunset makes his hair to red color is like fall-leaf. He stops walking and gaze the sunset.
At his head, cheekbones are strong and Jawsare sharp. But overall impression of him is sincere and reticient. bold eyebrows as attached pussywillow, a little big nose,  firm shutting mouth and above all, narrowed deep eyes with small sun insde. all of these remove wild or cold impression from him. and one thing, 
even though the red light of sunset cannot remove and still remained faintly it. it is a small gloomy shadows.
Under the red horizon, some houses are shown as small size like a chidren's toy. the houses makes a small village. Igor turn his eye away from the village. at last he turn his head for the top of the mountain. and walk up agaln
"Today the Sun falls and the world moves from brightness to darkness. In the bless of the moon, night will pass and the sun will rise agan. But, Oh!, Unchanged time! Heartless god!"
Because an aspen tree block his way, Igor stops his walking and starts talking ti himself.
"Tommorow is summer greet carinival, Ivan-Kupala's day. She will be the virgin of spring and many of the young will propse to her. then one man of them will be chosen by her as the young of summer. and she will dance with him. At last she will lie with him on the mother earth. Even I can't guess who will be the young man!"
Igor's voice becomes more and more loud. He snatch and crush the aspen's branch. when his big hand touch the branch. the branch coewrs and trembles like a weak animal.
“I don't want to know who he is!”
suddenly Igor howls as an angry bull and he whirls the crushed branch into the air. Leafs are fell down into the dark red air from the branch. Igor bites his lower lip with looking down the ends of  branch.
“He is nothing to me. Only she means in me, Riberr, Ribe…….”
Beside of the road, Trees' shoadow become more dark while his voice calm down. once he breath large and throw the branch. he move his feet hurry. as follwing him, the night crawl up the mountain

2.
becomes near to the top, roads are more and more narrow and wild. But Igor was dodged to rocks and branchs. so his feet moves steel quickly. when the white full moon rise from the opposite mountain and expose her all, finally Igor reach the flat land of the top.
In the blue darkness, the trees around toe top looks a faint stain of delta shape as a swarm od fishes in the ocean.
In the middle of place surrounded by tree. a small lake is placed in a distance enough to Igor can reach in a few steps.
Igor breathes a hard sigh and go to the lakeside. the surface of lake is glittering in the darkness as a eye of one beast. Igor stoops and sit near the lake. and when he gaze down to the surface, there was also one uncertain wild face gazu up to him in the moon's light and star's glitter.
“Oh! Who is this man?. the whole village's teasing is right. Is he a mane like an animal or an animal like a human? What the hell is he? Riberr, only you say certainly he is a human being. Graceful woman! What makes you possible to say that he is the buddy Igor……”
‘rustle!’
the small sound makes Igor stop to speaking and start to looking around. But he can found only deep shadows. they should be trees in the dark night. It's hard to Igor to found anything cleary even if somebody listen
secretly and sneer scornfully or even if one wild beast prepare for attakc with sticky drooling
“who's there?”
Igor ask respevtfully to the darkness. But the darkness is keep its silence as it deny his ask.
“who?”
Igor stand up carefully and ask again. at the same time some stones are in his big hand for preare to throw.
“wh……”
The continued silence makes Igor to confuse what he heared. so he lost the stones to the ground. they makes small splat sounds.
“Mew~”
At that time, when Igor try to again sit. small growlings are came from the darkness. the
small but high sounds comes slowly with sad, with happy.
“It's a cat. Ah! stupid Igor. You fear a cat.”
A small shadow comes to close with twinkling yellow eyes, while Igor murmurs.
“Mew~”
the cat who have certain black pleage in the uncertain darkenss, comes to near Igor and growls with shaking tail. the cat comes closer and walks arond Igor. It makes Igor to feel getting funny with the cat.
“Oh, Cat!, Black Cat! You the Chernobog(Slavic god of darkness)'s steward!
I'm also a vulgar anmal. Please, give me words of comfort, if you think I'm a pitiful brother."
“Mew~”
But the cat just cries onetime without any reply to his fun request. So Igor makes silly smile and at that time the cat stops his steps. and the cat hold up his forefeet and stands up with shaking tale from left to right. He starts freaky dance as like a doll in old tales who binded by strings. the dance's beat is almost loose. it is with shaking from side to side as like a bull's testes, spinning in the same place as like a tired top and jumping somtimes.
“Oh! What a suprise!.”
푸르스름한 하늘의 절반을 하얀 달이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의 반을 매울 듯 별들이
반짝였다. 희미한 빛들이 어둠 사이로 흩어지고 고양이의 춤은 위태위태한 줄타기처럼
이어졌다. 들리지 않는 그 밤의 음악이 이고르의 안에도 스며드는 것처럼 이고르도
이따금 발을 움찔거리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Hello, ther?. Mew~”
비올라의 현이 끊기듯 절벽에서 상심한 노총각이 뛰어내리듯 한 다리를 들어 올리고
한 손을 쳐들고 한 손을 뻗은 채로 검은 고양이는 갑작스레 춤을 멈췄다. 균형을 잡
기 어려운 듯 긴 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휴, It so hard. Mew~”
고양이는 몸을 바로하고 긴장을 풀듯이 꼬리를 한 차례 저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 빨간 혀로 낼름 핥아서 침을 묻혀 콧등을 쓸고 수염을 천천히 닦아냈다. 그 사이
고양이의 춤에 취했던 이고르는 점차 정신을 차렸다.
“Oh! What happened?. A cat dance and say. even the witch who breed me,doesn't have magic like this. It must be a devil's play”
“What? Why you say so even thogh you enjoy? You are stupis man as your shape, No, more than your shape. mew~”
고양이는 이고르의 커다란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You are Igor. Aren't you.?
“No. I'm……. My name is Ivan. Not Igor.”
Igor shrinks back and tells a lie cause he feels a little fear. 고양이
가 노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이고르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긴 꼬리를 천천히 좌우로 흔
들었는데 마치 다 알고 있으니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듯한 동작이었다.
“Mew~ What are you afraid? Shame on your shape. Your bulk is a bear and your face is a wolf. okey. okey. Okay. We don't have just a short time. So i say simplly. The queen invites you.”
“The queen does me?”
“Yes, Queen does you."
“What queen? The queen Anna in Kiyef?”
“What you do sleeptalking? The queen hire a black cat as a steward is only the winter queen. Okey. Let's go to the ice palace on the mountain Brokken. Please, don't absent your mind about early night. The summer night is the shorttest night. We need to go while the moon bright.”
검은 고양이는 등을 보이고 꼬리를 허공에 저으며 먼저 몇 걸음 앞서나가다가 돌아
보고는 이고르가 제자리에 멍하니 있자 낮게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캭~ What are you doing now? I say hurry up.”
“But How? whie we down this mountain and across the wide plain and bla bla... It must be became a morning before we near the Brokken.”
“Oh, sure! If we go on a man's road,인간의 길로 간다면 몇 날 며칠이 지나고서야 숨을 헐떡이며 겨우
도착하겠죠. But! Mew~ If we go on the spiritual road that makes by Leshij(Slavic spirits of a forest)와 Polevik(Slavic spirits of a plain) than we will reach in time. Hurry up! Mew~”
그렇게 말한 고양이는 성큼 앞으로 내딛더니 허리를 숙이고 네발로 달리기 시작한다
. 방금까지 서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네발로 달리는 것
이 자연스러웠다. 이고르는 급히 그 뒤를 따라 성큼성큼 뛰었다. 나무 그림자가 덮쳐
들고 밤거미가 늘어뜨린 거미줄이 얼굴에 부딪혔다. 길이 아닌 곳으로 달리고 있었지
만 눈앞에서 어른대는 고양이의 꼬리를 휙 잡아채고 싶은 걸 참고 달리는 이고르는 불
편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내려간다 싶으면 올라가고 올라간다 싶으면 옆으로 꺾이는
길을 정신없이 달리느라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길에 스며든 어떤 보
이지 않는 힘이 이고르에게 오로지 달리는 것만 생각하게 하고 있었다. 등 뒤에서 수
근 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고함을 지르거나 투덜거리는 늙은 마녀의 모습도 사
랑스런 마을 처녀 리베르의 모습도 이고르의 머릿속에서 점차 희미해져서 사라졌다.
눈앞에 고양이가 보였고 길 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겨울여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세
가지가 전부였다.
3.
‘쿵-’
“Mew!”
‘철퍽-’
갑작스레 고양이가 멈춰서는 바람에 이고르가 부딪혔다. 고양이는 튕겨져서 허공에
서 한차례 울고는 몸을 비틀어 사뿐히 내려앉았고 덩치 큰 이고르는 요란스런 소리를
내고 주저앉았다.
“What the reason that makes you suddenly stop?”
이고르는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일어섰다.
“As you see, it's a fork of a road.”
고양이가 말한 것처럼 그들의 앞에는 나무와 덤불, 잡초와 바위 사이로 난 길이 둘
로 나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달빛과 별빛을 받아 갈림길은 뚜렷했다.
“Choose one? Mew~ For reference, the left is the day road an the right is the night road. Mew~”
마치 고양이는 장난이라도 치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이고르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마법에 걸린 것처럼 멍한 이고르가 처음 와보는 길을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짐승의 주둥이처럼 뾰족한 턱을 좌우로 흔들 뿐이었
다.
“I don't know. I can't guess all.”
“Mew~”
고양이는 노란 눈을 가늘게 뜨고 쫑긋한 귀를 살짝 움직이며 한 차례 울었는데 마치
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우리가 갈 길은 어느 쪽도 아니죠. 누군가 그랬던가요? 야옹~ 모든 경계(境
界)에는 꽃이 핀다죠? 우리가 가려는 곳은 낮과 밤의 경계, 생명과 죽음의 경계, 사랑
과 증오의 경계, 신과 악마의 경계, 마을과 숲의 경계, 어른과 아이의 경계, 모든 시
간과 장소의 경계랍니다. 자, 길들아! 길이 되어라.”
고양이가 소리 높여 외치자 좌우로 뻗은 좁은 갈래 길이 위험을 느낀 벌레의 더듬이
처럼 곧게 펴지더니 하나로 합쳐져서 한사람이 나갈 만한 곧은 길이 되었다.
“Hey, Let's go. the end is near there. Just a step more than you'll see the queen's palace. Mew~”
이고르는 끄덕이고 앞서 가는 고양이의 뒤를 따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길은 참
나무와 자작나무 숲 사이를 가로질러 점차 오르막길로 변했는데 경사가 가파르게 변하
는 데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고양이와 이고르는 결국 숲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곳은 산 정상이었으며 커다란 성
의 앞이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성은 달빛과 별빛을 빨아들여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
다. 역시 얼음으로 만들어진 좌우로 열리는 큰 문 앞에는 암갈색의 얼룩무늬 부엉이
한 마리가 등을 보이고 서있었다. 부엉이는 고양이와 이고르가 오는 것을 못 느꼈는지
문을 쳐다본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Hey! Mew~ Uncle!”
고양이가 대뜸 부르자 부엉이는 등 너머로 얼굴을 돌렸다. 목이 뒤틀리듯 머리가 먼
저 홱 돌아보고 나서 짧은 다리를 깨끔깨끔 움직여 몸을 돌렸다. 넓은 얼굴에는 도톰
하고 뾰족한 부리가 달려있고 그 위로는 한 쌍의 짝눈이 노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접시처럼 커다란 왼쪽 눈과 뉘어놓은 접시처럼 짜부라진 오른쪽 눈이었다.
“Ahah, It's a cat. The buddy with you is the buddy you say?”
부엉이는 이고르를 살피며 목을 꺾어 고개를 비스듬하게 틀었는데 왼쪽 눈이 가늘어
지고 오른쪽 눈이 커졌다.
“Hm, Well, Is this nuddy a bear or wolf??”
풀과 나뭇잎이 거미줄에 엉켜 옷에 들러붙고 갈색머리는 거칠게 흩어져 이고르의 모
습은 무척이나 지저분해보였다. 덩치가 큰데다 등이 살짝 굽은 이고르가 그런 모습으
로 서있으니 부엉이가 말한 것처럼 마치 곰이나 늑대 같은 사나운 짐승이 두 발로 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고르는 부엉이의 말을 듣고 성의 얼음벽에 자신을 비춰보고
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얼른 손을 들어 옷깃을 여몄지만 단추가 떨어져나가 털이 숭숭
한 가슴이 드러나고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문지르자 오히려 넓게 퍼져 얼굴 전체가 지
저분해질 뿐이었다. 부엉이는 그런 이고르를 보며 목이 꺾이는 것처럼 다시 고개를 반
대로 틀었다.
“Well, that's no matter. Here's an owl, there's a cat. than you are a bear or a wolf is no matter. Come in.”
부엉이가 문 앞에서 비키자 문은 잡아당기지도 않았는데 활짝 열렸다.
“From here to the queen, you need to go by yourself . Mew~ 그냥 쭉 복도를 따라 가시면 여왕님이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There's only she without others?”
“Mew~”
이고르는 불안스레 쳐다봤지만 고양이는 한 차례 울고는 혀를 내밀어 앞발을 핥고
수염을 다듬을 뿐이었다. 이고르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은
어둡지 않았다. 벽은 온통 투명한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크고 작은 별빛을 그
안에 머금고 있어서 이고르는 마치 밤하늘에 떠오른 느낌이었다. 발밑에선 흐릿하게
비춘 이고르의 모습이 조금씩 흔들리며 이고르의 걸음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It's really dirty and ugly face. 이런 모습으로 여왕님을 만나면 실례가 되는 게
아닐까?”
이고르는 발밑에 비춘 자신을 보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고르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었다. 이고르 자신은 못 느꼈지만 굽
은 등 위로 어깨가 오르내리고 굵은 팔이 흔들리는 그 모습은 덩치 큰 짐승이 먹이를
노리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 닮아있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는 길게 이어졌
지만 원체 보폭이 넓은 이고르라서 금세 복도가 끝나는 곳에 있는 넓은 홀에 닿았다.
4.
홀의 천장은 뻥 뚫려 있었는데 낮게 뜬 커다란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벽에는
양초를 놓는 작은 선반 같은 선반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는데 그 선반마다 조각 같은
흰 비둘기들이 소리 없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홀의 중앙에는 한 명의 여인이 서있었다
. 여인은 건장한 이고르 만큼이나 키가 크면서도 호리호리한 체구였다. 허리를 덮은
긴 머리는 얼음으로 된 성벽만큼이나 투명해 보이는 백금발이었고 고운 얼굴엔 새파란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입술은 창백해서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하얀 피부는 새벽 사
이에 내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과 같았다. 길고 곧은 목 아래엔 쇄골이 선명하게 돋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고 이고르는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여인은 아
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는데 부드럽게 내려앉다 탄력 있게 솟은 가슴과 오목한 허리가
드러나고 있었고 가볍게 꼬고 서있는 허벅지 위에도 걸친 것이 없었다. 이고르는 민망
해서 급히 고개를 숙였다.
“At last you come th here. Igor, my Igor.”
“Ye, yep? Your highness, queen?”
“훗, 당황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오래전부터 지켜보며 기다려왔답니다. 당신은 본
래 이곳에 속한 분, 이고르 당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괴로움 밖에 겪지 않았죠.”
겨울 여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이고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고르는 다가
오는 여왕의 벗은 몸이 바닥의 얼음에 흐릿하게 비추는 것을 보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
다.
“Are you shocking? But all goes fine. Please, open your eyes and go to the border world.

눈을 감은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어느 나무그늘에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처럼 이고르의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이고르는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이 조심스
레 실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파아란 한 쌍의 눈과 마주쳤
다. 파란 눈에는 호수처럼 하얀 달이 잠겨있었다. 이고르는 그 눈을 통해 서늘한 한기
가 흘러드는 것 같았다.
“Here…….”
여왕이 허공에 섬세한 손가락을 뻗자 흰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요란스런
날개소리와 함께 달 그늘 속으로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바닥의 한 점을 향해 내려앉
듯 허공의 한 점으로 솟구치듯 무수한 백색의 날개들이 끝없는 나선의 계단을 만들었
다.
여왕은 어디선가 나타난 자루 짧은 큰 낫(러시아의 전통 낫)을 들어 허공을 가볍게
베었다.
“Please, come here. Igor.”
여왕은 얼음 조각 같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비둘기들의 날개를 딛었다. 비둘
기들은 마치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날개 치던 모습 그대로 허공에 멈춰있었다. 작은
맨발이 하얀 깃으로 덮은 몸과 날개를 하나씩 밟고 높은 곳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
고르는 여왕을 따라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발이 비둘기를 밟을 때 마다 어
깨를 움찔거렸다.
“All right, my sweet dear. The doves feel nothing. What we step on is not only their body but also the crevasses of time and time. In the time that are not exist, All are free. Sure, making your mind to light is not bad.”
여왕은 돌아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보다 낮은 곳에 있던 이고르는 눈
앞에서 물결치듯이 여왕의 가슴이 흔들리며 나타나자 고개를 숙여버린 채로 끄덕거렸
다. 여왕이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는 소리가 밤하늘에 흩어졌다. 여왕과 이고르는 반
짝이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겨울 궁전을 벗어나 밤하늘 속으로 걸어 올라갔다. 지상에
서 그들을 올려다본다면 마치 하얀 달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서늘한 밤바람이 이고르의 헝클어진 머리를 흩었다. 허공으로 얼마나 올라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머리 위에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커다란 달이 높은 산 위에서 내려
다본 밀밭처럼 펼쳐지고 발밑에는 어디쯤 그들이 떠나온 겨울 궁전이나 브로켄 산의
정상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어둠이 펼쳐져있었다. 이고르 자신은 못 느꼈지만 이
고르는 한걸음 한걸음 비둘기의 날개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는 사이 변하고 있었다.
먼저 그의 의복(衣服)이 삭아서 흩어졌다. 단추들이 풍뎅이 마냥 날아가더니 낡은
셔츠는 조각나고 흩어져서 먼지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묵직한 가죽장화는 쥐 파먹
듯이 구멍 나더니 굽이 떨어져나가고 끈은 흘러내려서 뱀처럼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갔
다. 수욱 하고 장화가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이고르는 여왕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
다. 그의 낡은 모직 바지가 밑단부터 올올이 풀려서는 바람에 흩어지는 여인의 머리카
락처럼 흩어졌다. 아슬아슬하게 바지조각이 남았을 때쯤에는 이고르의 몸이 변하기 시
작했다. 이고르의 뒷목을 간신히 덮고 있던 옅은 갈색 머리가 길게 자라고 손등에서
팔뚝가지 무성하게 자란 털이 어깨까지 수북하게 자랐다. 가슴을 덮고 있던 수북하고
탐스럽던 털도 배꼽을 덮고 허리를 덮어버렸다. 귀는 뾰족하게 변했고 눈은 깊어지고
눈꼬리는 길게 찢어졌다. 이고르는 턱이 근질거리 긁다가 턱이 길게 튀어나온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다. 손을 내려다보니 두꺼운 손톱이 뾰족하게 자라있는 데다 온
통 갈색 털이 수북하게 손마디까지 덥고 있었다.
“Oh my goddes! what happed to me?”
이고르는 깜작 놀라 소리쳤다. 여왕은 걸음을 멈춰서 돌아섰는데 눈가에 잔주름을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여왕의 백금발 머리카락이 햇살처럼 흩어졌다
.
“Looks good. The metamophosis makes better than I expect.”
“My highness, you us magic power on me”
여왕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파아란 눈이 까만 하늘에 푸른
호선(弧線)을 잠깐 그렸다가 멎었다.
“후후, That's your magic power. How du you think about your being? an animal? or a human? What I say is not only your shape. Please, think about the world around you and in you.”
“What you mean?”
“Meanning! What's the maeaning of the day and night are fighting? And what is the meanig of our being's life on the fighting? What is the meanig that the haeve and the earthe are so far but they meet at the horizon? A cat's crazy dance, An owl's broken neck, The ice palace with a big sister of the Rusalkas(Spirit of lakes and water) and you! What is the meaning of these?”
여왕은 커다란 달을 품에 안으려는 것처럼 가녀린 팔을 높이 뻗으며 쉼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이고르는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달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털투성이 굵은
팔로 머리를 긁었다. 그가 대답하기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후후후, yes! The meaning means over these. Alls are in the meaning but words are too small to mean. Sometimes too large meaning is same with no meaning.”
“I don't care about difficulty what you say.I just want to know what happend to me.”
“Igor, Why you worry about the shape?”
“But, this shape... If Riberr looks this shape. She will suprise or afraid.”
이고르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환히 웃던 여왕의 얼굴에서 서서히 그
늘이 졌다. 여왕은 창백한 푸른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서운한 눈길로 이고르를 바라봤
다.
“Oh! Please, forget the useless girl?”
“But Riberr, Riberr was kind to me. Only Riberr was kind to me. One day I met gals on thr plain. most of gals scream and run away. but she leaves and talk with me in smile. and another day the old witch throw me out than she came to me and gave a bread.”
여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여왕의 백금발 머리카락을
이고르의 눈앞에 흩었다.
“Igor, Why not forget that meanless. I think she should forget.”
“No. Impossible! 나는 잊을 수 없습s다.”
이고르는 여왕의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여왕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고
개를 저었는데 파아란 두 눈이 금방이라도 말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젖어있었다.
“오오, 이고르. 어떻게 나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나와 함께 잊는 것
이 싫은가요?”
“I'm really sorry for you. 여왕님을 알게 된지는 하루 밤도 되지 않았지만 여왕님이 좋은 분이
란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여왕님이 절 데려가려는 곳도 좋은 곳이겠죠. 하지만…….”
이고르는 긴 턱을 가슴에 파묻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뾰족한 귀가 힘없이 쳐졌다
. 몇걸음 위에서 그런 이고르를 내려다보던 여왕은 기운 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비
둘기 계단을 밟고 얼굴이 마주닿을 정도로 가까이 걸어 내려왔다.
“No way. As you wish, Igor…….”
서늘한 손길이 이고르의 털북숭이 턱을 잡아끌었다. 얼음조각 같은 고운 얼굴이 이
고르의 눈앞에 바싹 다가왔다. 이고르는 눈을 감았지만 입 끝에 와 닿는 부드럽고 촉
촉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서늘한 느낌이 머리에서 목을 타고 허리로 온 몸으로 퍼
지더니 점점 차가운 느낌으로 변했다. 어느 겨울 아침에 입김을 뱉으며 짚더미로 덮은
침상에서 일어났을 때 온 몸이 쩌릿쩌릿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Whenever you see the fullmoon on the sky, please. recollect me who's in the snowy ice land with waiting for your return. It'll take so long time to meet again. I'll pray for you till the time…….”
부드럽고 서늘하지만 어딘가 깊은 곳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
으며 눈을 감은 이고르는 깊은 어둠에 잠겼다.
5.
다시 이고르가 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은 마을 밖 마녀의 집 창고 밖에 누워있었다.
따스한 바람이 기분 좋게 그의 옷깃을 간질였고 하늘에는 눈부신 태양이 높이 떠있었
다. 이고르는 급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갈색 털이 조금 자란 투박한 손
이었다. 이고르는 손을 뒤집어서 손바닥까지 살피고는 그 손으로 자신의 턱과 귀를 쓰
다듬었다. 귀는 뭉툭했고 턱은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Oh! Does my body return? Or was it just a stupid dream?”
이고르는 알 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났다.
“However... what happend to this house? 왜 먼지가 가득하고 거미줄투성이가 된 걸까. 창문은 떨
어지고 벽에는 구멍까지 났는걸. 마치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은 집 같지 않은가. 늙
은 마녀는 어디 간 거지?”
이고르는 흉가가 되어버린 마녀의 집을 둘러봤지만 온통 먼지와 거미줄, 벌레와 부
서진 가구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어젯밤 일이 그저 꿈만은 아니었
던 걸까? 마을에 가서 물어봐야 하는 걸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또 날 쫓아내겠지.

이고르는 중얼거리며 서성대다가 멈칫 멈춰서는 주먹을 쥐고 손바닥을 내려쳤다. 탁
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Riberr!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마을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리베르의
집에 가봐야겠다.”
이고르는 밀밭 사이로 난 길을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게 조심스레 걸어서 마을에 갔
다. 마을은 이고르가 기억하던 것과 달라져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반기지 않아서 마을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먼발치에서나마 자주 보던 모습과 달라져있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더 높아진 건물도 있고 울타리를 새로 새운 집도 있었다. 못 보던 종탑
달린 높은 건물의 지붕이 마을 중앙에 솟아있는 것도 보였다.
“이래서야 리베르의 집을 찾을 수나 있을까. 내가 혹시 전혀 엉뚱한 마을에 온 것
은 아닐까?”
하지만 다행히 마을 전체의 윤곽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이고르는 어렵지 않게 리베
르의 집이 있는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골목의 그늘에 몸을 숨기고 마굿간과 창고를
넘어 이고르는 덩치 큰 몸을 날쌔게 옮겼다. 이따금 이고르의 기억에 없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고르는 급히 몸을 숨겼다.
이고르는 간신히 리베르의 집에 도착했다. 거위와 돼지를 키우던 마당에는 아무런
짐승의 흔적도 없고 집은 통나무 벽이 반쯤 썩어 들어서 검게 보였다. 이고르는 조심
스레 문을 열고 틈새로 방안을 엿봤다.
6.
오랫동안 때에 찌들고 그것을 억세게 빨고 한 것이 반복된 것임에 틀림없는 시트는
연한 황색으로 물들어 닳아 있었다. 그 낡은 시트로 덮인 침대, 짚단으로 속을 채운
침대 위에 노파는 누워있었다. 누런 색과 검은 색이 섞인 개털가죽 모포를 간신히 흰
속옷의 가슴까지 덮고 있었고 흰색과 회색이 섞인 긴 머리는 머리맡에 늙은 나무뿌리
처럼 흩어져있었다 둥근 얼굴은 주름과 검버섯으로 가득했고 가늘게 떠진 눈은 늪 같
은 탁한 녹색인데다가 희노란 눈곱과 진물로 거의 가려져있었다. 푸줏간에 굴러다니는
어떤 짐승의 창자처럼 검푸르고 쭈글쭈글한 입술은 반쯤 벌어져 있었는데 옥수수 같
은 누런 이가 듬성하게 몇 개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노파는 씩씩거리고 가릉거리는
힘겨운 숨을 쉬고 있었는데 숨 쉬는 것에 지쳤는지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컥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작은 가래덩이를 토해냈다. 가래덩이는 노파의 입가를 흐르고 턱선을 거
슬러 귀밑으로 사라졌다.
“Wh…… oo? who's there?”
노파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힘겹게 목을 쥐어짜듯이 물었다.
“……Igor. the one was raisen by the witch, Igor.”
한참을 망설이던 이고르가 대답을 했다. 긴장한 것인지 그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
었다.
“Who? Igor? Witch's Igor?……. wolfman Igor! Is it really?”
자신에게 묻듯이 점점 사그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노파는 몸을 일으키려고 팔을
움직여 침대를 짚었다. 그러나 짧은 소매 밖으로 드러난 검버섯과 주름에 덮인 앙상한
팔은 바람에 퉁긴 보릿대처럼 부르르 떨리고는 힘없이 늘어질 뿐이었다. 몸을 일으키
는 것을 체념한 듯 노파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머리를 돌려 이고르를
향했다. 그것만으로 굉장한 힘을 쓴 것인지 노파의 주름진 얼굴은 일그러지고 벌어진
입에서는 탁한 색깔의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노파는 지저분한 눈을 끔벅거리더니
한숨을 내뱉었다.
“Please, come on. I'm almost blind.”
이고르는 가볍게 삐걱 이는 나무 바닥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토끼를 덮치는
늑대처럼 조심스런 모습이었다. 이고르는 침대에 가까이 갈수록 알 수 있었다. 방구석
의 어둠, 이고르가 달빛의 세계에서 잊고 있던 어둠. 그가 모르는 수십 년 동안 이곳
에 도사리고 있던 어둠이 노파의 온 몸에 스며있었다. 그건 밤의 어둠과는 또 다른 형
태의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에 잠긴 노파는 이고르가 기억하는 착하고 사랑스런
마을 처녀 리베르였다.
이고르가 노파가 된 이고르를 살핀 것처럼 이고르를 살핀 노파 리베르는 앙상한 팔
을 들어 갈퀴 같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Oh, no! Jesus! What happened to you?”
“Don't scare. I'm not change.”
이고르는 커다란 손을 들어 노파의 팔을 부드럽게 끌어내려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So I suprise. What makes you unchang? be... beside I was changed……
.”
“you are also in unchange.”
이고르는 노파 리베르의 눈가에 손가락을 뻗어 닦아 내며 부드럽게 웃었다. 손끝에
진물과 눈꼽 그리고 알 수 없는 뜨거운 액체가 묻어났다.
“왜 사라졌던 거죠? 당신이 없던 축제날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아나요? 그 뒤로…
… 콜록, 컥.”
노파 리베르는 말을 하기 힘든 듯 기침을 했다. 이고르는 모포자락을 끌어서 주름진
입가에 뭍은 침을 닦아내주었다.
“all right. There's many time to talking.”
이고르는 한차례 조용히 웃고는 일어서서 나무 들창을 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낮
달이 떠있었고 멀리서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축제의 노래,
이반쿠빨라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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