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김없이 빼았기는 나무 by 귀우혁

봄이 끝나고 여름이 오려는 어느날 큰 비가 지나고 마을 밖 들판에 연한 연둣빛 싹이 하나 자랐습니다. 한 여인이 아기를 품에 안고 나왔다가 싹을 보았습니다.

-아이야 아이야 저 싹은 네 나무란다. 무럭무럭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네 것이 될 거란다. 그러니 너도 무럭무럭 자라렴.

여인은, 어머니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며 말했어요.

그리고 아이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어요. 마을 밖 들판의 싹도 무럭무럭 자랐어요. 아이는 밤처럼 까만 머리에 환한 웃음이 예쁜 소녀가 되었어요. 싹은 줄기가 뻗고 가지가 퍼져서 작은 나무가 되었어요.

어느날 어린 소녀는 어머니와 들판에 나왔어요. 소녀는 팔짝팔짝 뛰어놀다가 작은 나무 앞에 왔어요.

-아이야 아이야 저 작은 나무는 네 나무란다. 네가 이만큼 자랄동안 나무도 이만큼 자랐구나.

어머니는 어른 키만큼 자란, 하지만 아직 줄기가 굳지 않은 나무 앞에 아이를 세워보고 말했어요. 아이는 자기 머리 위로 손이 닿지 않게 자란 나무를 보고 헤 웃었어요. 그리고는 폴짝 뛰어서 가지를 잡고 메달렸죠. 하지만 두둑! 아직 가늘고 여린 나뭇가지는 그대로 꺾여버린 거에요. 어린소녀는 콰당 엉덩방아를 찍고는 엉엉 울었어요.

-아이야 아이야 울지마렴. 괜찮단다.

-훌쩍훌쩍, 나무 나빠! 다음에도 아프게하면 뽑아버릴 테다!

어린소녀는 눈물을 거두더니 나무늘 노려보며 씩씩대며 말했어요. 어머니는 그런 아이의 뾰루퉁한 모습도 귀여워서 다시한번 아이를 꼭 안아주고는 한 손을 잡고 같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죠.

나무는 어린소녀의 말을 듣고 열심히 자랐어요. 줄기를 더 굵게 가지를 더 단단하게.

그리고 또 시간이 얼마 지나고 소녀가 찾아왔어요. 이제는 꼬마아이가 아니라서 혼자왔지요. 나무는 그새 열심히 자라서 어른키를 훌쩍넘겼지요. 소녀는 나무의 가지에 줄을 걸고 줄에 나무판을 걸더니 뚝딱 그네를 만들어서 탔어요.

소녀는 앞뒤로 그네를 흔들흔들 신나게 흔들흔들 탔어요. 그때마다 가지는 휘청휘청 휘고 흔들렸지만 나무는 온힘을 다해서 뿌리로 땅을 꽈악 쥐고 가지를 당기고 버텼어요.

소녀는 신나게 나무를 타고는 한참만에야 그네에서 내려오더니 고개를 들고 나뭇가지 여기저기를 살폈어요. 그러더니.

-이 나무는 어쩜 꽃도 안피고 열매도 안맺을까? 참 쓸 모 없는 나무구나. 다음에도 이러면 베어다가 땔감이나 해야겠다.

하고는 소녀는 걸어둔 그네도 떼지 않고 그대로 가버린 거예요.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났어요. 나무는 열심히,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자랐어요. 힘껏 노오란 꽃도 피웠고 빠알간 열매도 맺었지요. 그러면 소녀는 불쑥 불쑥 와서는 꽃을 잔뜩 따서 머리에 꽂거나 옷에 달고 가고 열매는 툭툭 따서 한 입 베어물고는 버리곤 했어요.

소녀는 하루하루 자라더니 젊은 아가씨가 되었어요. 그리고는 나무를 찾는 일이 줄었죠. 나무는 마음놓고 열심히 자랐어요. 이대로 들판에서 커다란 나무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가씨가 다시 찾아왔어요. 나무는 열매를 하나 떨궜죠. 하지만 아가씨는 이거로는 부족하다고 했어요. 결혼을 할 밑천을 만들 거라고 열매를 몽땅 내놓으라고 가져다 팔겠다고 했죠. 소녀는 긴 막대기를 가져와서 나무의 가지를 마구 때리고 휘저어서 열매란 열매는 다 따갔어요. 아직 굵지 못한 가지들이 마구 부러지고 이파리들은 비처럼 쏟아졌죠.

그렇게  아가씨는 매 해마다 몇번이고 와서 나무의 열매를 싹 다가고 가지와 잎을 상하게 하더니 어느 해 이후로는 오지 않았어요. 나무는 마음놓고 다시 열심히 자랐어요. 정말로 큰 나무로 자랐어요. 큰 그늘이 드리워져 맑은 날은 짐승들이 그늘에서 쉬다가고 비가 올때는 가지마다 새들이 잔뜩 모여서 비를 피하곤 했죠. 나무는 즐겁게 자랐죠.

하지만 어느날 아가씨 티를 벗고 여인이 된 그녀가 찾아왔죠. 옆에는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금발의 잘생긴 남자도 한명 있었어요.

-여보, 이 나무가 내 나무야! 잘 자랐지?

-그러게 이정도 가지들이면 집을 만드는데 충분할 거야.

하더니 남자는 사다리를 놓고 나무에 오르더니 가지들을 톱으로 자르기 시작했어요. 나무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깔깔 웃으며 잘린 가지들을 모아다 묶었죠. 그리고 두 사람은 잘라낸 가지들을 짊어지고, 몸통만 남은 나무를 남겨두고 가버렸어요.

몸통만 남은 나무는 며칠이나 비명을 지르고 울었지만 소용없었어요. 사라진 가지는 다시 나지 않았어요. 가지가 없으니까 햇볕은 따갑게 몸을 할퀴었고 비를 받아 마시기도 어려웠죠. 새들도 짐승들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나무는 열심히 자랐습니다. 다시 가지를 뻗으려고 작은 싹을 몸통에 내보기도 하고 뿌리를 더 깊이 더 굵게 뻗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곱던 얼굴에는 하나 둘 주름이 생기고 까맣던 머리에는 살짝 새치도 생겼습니다.

-이 나무가 재수가 없었던 걸까? 전쟁이 나서 남편이랑 아이들이 다 죽었어. 여러 사람이 죽었어. 이제는 이 나무로 관을 만들어야 겠구나.

하더니 그녀는 사람들을 불러다 나무의 몸통을 베어냈어요.

굵은 몸뚱이에 안 어울리게 잔가지만 겨우 뻗고 있던 나무는 무겁고 뾰족한 도끼날이 허리에 박히는 것을 느끼고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어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죠. 그녀는 사람들을 부추켜서 더 빨리 나무를 쓰러뜨리라고 했어요. 결국 나무는 밑둥만 남기고 쿵 쓰러졌고 사람들을 줄을 메어 나무의 몸통을 끌고 갔죠. 그 앞에는 그녀가 서 있었고요.

밑둥만 남은 나무는 더 이상 가지를 뻗고 싹을 틔울 힘도 없이 죽어갔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나는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뿐인데. 

그렇게 밑둥만 남은 나무는 말라붙고 썩어들어가며 하루하루 죽어갔어요. 그리고 그녀가 다시 왔죠. 허리가 굽고 머리는 하얗게 세었어요. 그녀는 밑둥만 남은 나무에 걸터앉았어요. 그리고는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봤죠.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나는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뿐인데.

그리고 그녀는 푹 고개를 숙였어요.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않았죠.


천사가 떠난 천국 2 by 귀우혁

천사양반도 거짓말을 하는구료. 나는 사냥꾼이라오. 그것도 수십년이나 된 사냥꾼이라오. 설마하니 내가 토끼가 도망간 흔적 정도 못알아보겠소? 토끼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한 게요? 그러진 않았을텐데.

못난이 천사는 민망해서 고개를 푹 숙였지만 늙은 사냥꾼이 딱히 화를 내는 게 아닌 것을 알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어요. 사냥꾼은 희미하게 웃으며 바닥의 풀이나 흙이 눌린 것을 살피더니 이내 토끼가 달아난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어요.

당신은 토끼를 죽일 건가요?

토끼를 쫓아 가려는 사냥꾼에게 못난이 천사가 물었어요. 사냥꾼은 못난이 천사를 흘끗 돌아보고 주름진 얼굴로 피식 웃었어요.

천사양반이 보는 것처럼 나는 사냥꾼이라고. 사냥꾼은 사냥감을 사냥하는 게 일이고.

하지만 토끼가 불쌍하지 않나요? 토끼는 당신에게 쫓겨서 엄청나게 바빠보이던데.

사냥꾼은 떼던 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돌려서 못난이 천사와 마주했어요. 못난이 천사는 사냥꾼의 눈이 생각보다 깊고 맑은 것에 놀랐어요. 사냥감을 쫓아서 몰아 붙이고 잔인하게 죽이는 일을 평생해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깨끗한 눈이었어요.

이 숲에 처음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오. 나는 젊어서 부터 이 숲에서 사냥을 했지. 처음에는 덫을 놔서 작은 동물을 잡았고 다음으로는 사슴처럼 크지만 그리 위험하지 않은 동물을 잡았소. 그리고는 곰이나 늑대처럼 크고 위험한 동물을 잡았지. 여우도 잡았고 너구리도 잡았다오. 그렇게 수십년을 숲의 동물을 사냥하며 사는 동안 나는 완전한 사냥꾼이 된게요. 진짜 완전한 사냥꾼!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잊고 사람들도 나를 잊었다오. 언제나 눈은 짐승의 발자국을 쫓고 귀는 풀숲이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를 맡는다오. 그리고 오로지 사냥감만을 생각하게 되지.

그건….

못난이 천사는 그건 조금 무섭다고 말을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사냥꾼은 못난이 천사가 무슨 말을 할 건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웃으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래서 이 숲처럼 된 거라오. 이 숲에서 새소리가 들리시오? 짐승들이 낙엽을 밟고 돌아다니는 발소리는? 이 숲은 죽은거요. 한 명의 사냥꾼이 숲을 죽인거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게 그 토끼라오. 나는 벌써 몇년째 그 토끼를 쫓고 있지. 토끼가 죽으면 숲은 정말 완전히 죽을테고 사냥감을 잃은 사냥꾼도 죽을테지. 그래서 몇년째 못잡고 이렇게 쫓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구려.

그러면 그냥 토끼를 놓아주면 되지 않나요?

못난이 천사는 사냥꾼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하기만 하던 숲이 어째선지 쓸쓸하고 허전하다고 느끼며 물었어요. 못난이 천사의 눈에 비친  숲은 천사들이 떠난 천사들의 도시와 같았어요. 며칠이고 몇날이고의 구분도 없이 못난이 천사 혼자 차칸천사를 기다리런 텅 빈 도시와 같았어요.

하지만 난 사냥꾼인 게야. 사냥꾼의 심장은 사냥감이 없으면 죽는 거고. 그리고 이제와 내가 토끼를 놓아준 들 토끼라고 살 수 있겠는가? 이 죽어버린 숲에서? 내가 저를 쫓는 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저도 내게서 도망치는 동안 살아 있는 게지. 저길 보라고. 녀석이 기다리고 있군.

사냥꾼은 그렇게 말하고는 못난이 천사를 그대로 두고 돌아서서 숲 한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어요. 아닌게 아니라 못난이 천사의 눈에는 저만치 멀리서 멈춰서서 돌아보다가 사냥꾼이 움직이자 뛰기 시작하는 토끼가 보였어요.

그렇게 토끼가 먼저 숲의 어둠속으로 작아지고 그 뒤를 쫓아 늙은 사냥꾼의 모습이 작아지고 숲은 다시 죽은 듯한 침묵에 잠겼습니다. 못난이 천사는 아무도 없는 짙은 숲그늘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토끼가 알려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못난이 천사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그러다 숲을 벗어나서는 다시 푸득푸득 날았습니다. 우중충한 회색의 짝짝이 날개로 날았습니다. 얕은 풀로 덮인 초원을 날아서 지나고 작은 언덕과 시내를 건너고 천사들이 향했다는 방향으로 밤낮을 계속해서 푸득푸득 날았습니다. 못난이 천사는 날아가며 작은 사람들의 마을을 지나고 사람들의 작은 마을도 지나고 큰사람들의 큰마을이나 동물의 마을도 지났습니다. 밤낯을 계속해서 푸득푸득 짝짝이 회색 날개로 날았습니다.

많은 곳을 지나왔지만 어디서도 못난이 천사를 환영한 곳은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을 만났지만 누구도 못난이 천사를 환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차칸 천사가 더 보고싶고 간절해진 못난이 천사였어요.  

천사들은 어디로 간걸까? 차칸 천사는 어디로간걸까? 설마 세상끝까지 간 걸까?거기서 세상 밖으로 날아가버린 건 아니겠지?

한참을 푸득푸득 날던 못난이 천사는 중얼거렸어요. 그리고 정말로 세상의 끝에 가까워 온 것인지 누런 황무지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태양도 점점 커지고 머리 위로 바싹 내려 앉았습니다. 풀한포기 없는 땅은 뜨겁게 달궈져 아지랑이를 폴폴 내뿜었습니다. 못난이 천사는 푸득푸득 날다가 햇볕과 열기에 날개가 뜨거우면 바닥으로 내려와서는 발가락 사이로 자근거리는 모래를 밟고 걸었어요. 아주 가끔 부는 바람은 뜨겁고 메말랐어요. 조금 세게 바람이 불 때는 모래먼지가 뒤 섞여있어서 눈을 뜨기도 힘들어서 못난이 천사는 바람이 부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모래바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답니다. 그래도 낮엔 나은 거였어요. 커다랗던 태양이 먼 지평선을 발갛게 불태우며 한참이나 불길을 토하다가 간신히 사라지면 깜깜한 밤이 찾아왔는데, 밤에는 거센 바람이 짐승이나 미친사람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날이 밝을 때까지 내내 불었어요. 거센 바람에는 굵은 모래들이 섞여서 빰이고 팔다리고 할퀴기 일쑤였어요. 그렇게 몇날 몇밤이 지났습니다. 못난이 천사는 차칸 천사와 이야기하며 마셨던 차가운 아메리카노 커피를 떠올리며 열기를 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멀리 아지랑이와 햇볕이 뒤섞여 일렁이는 지평선에 그것이 보였습니다. 빨갛고 하얗고 노랗고 파란, 색으로 덮인 작은 땅이 보였습니다. 지금 까지 몇번 보았던 열기가 만든 허상, 신기루가 아닌가 했지만 못난이 천사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동안에도 푸득푸득 날아가는 동안에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점점 커지고 넓어졌습니다.

뭐지? 내가 지금 무얼 보고 있는 거지? 그리고 이 바람은 또 무어란 말이냐!

못난이 천사는 눈을 꿈뻑꿈뻑 하고 그것에, 거기에 다가가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내내불던 텁텁하고 누런 바람이 아니라 서늘한 습기를 머금은 투명한 바람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못난이 천사는 기운을 내서 파닥파닥 날아갔습니다. 거기에 펼쳐진 것은 몇 그루 야자나무와 몇몇 열대의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나서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고 그 그늘에는 여러 꽃들이 색색으로 뒤섞여 피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꽃과 나무들의 중앙에는 작지만 한두사람이 들어갈 정도는 되는 투명한 물웅덩이가 있었습니다.

맙소사!

못난이 천사는 다른 천사들처럼 높은 곳을 날며 신의 이름을 외치고 노래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못난이 천사는 짝짝이 날개를 파르르 떨며 힘을 쥐어짜고는 열기에 바싹 마른 몸을 허공으로 던졌어요. 그리고 풍덩!하고 물웅덩이에 뛰어들었습니다. 물은 못난이 천사의 허리 어슴까지 밖에 오지 않았고 차갑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못난이 천사는 물웅덩이에 주저 앉아서 얼굴까지 물에 푹 잠겨서 그 미적지근함을 서늘함처럼 느꼈습니다. 그렇게 물웅덩이에 잠겨서 몸을 식힌 못난이 천사가 일어나서 회색 날개를 철퍽거리며 깃털 사이에 잔뜩 붙은 모래먼지들을 털어낼 때였어요.

키득키득

어디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남녀 성별을 알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이 웃는 것 같은 소리 였어요. 못난이 천사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지만 듬성듬성 곳은 야자나무 그늘에 꽃들만 색색으로 피어있을 뿐이었어요. 아무도 보이지 않았죠.

누가 웃은 거에요?

키득키득

못난이 천사가 해바라기가 핀 오른쪽을 향해 물었더니 왼쪽에서 웃음이 들려왔어요.

누구죠?

킥킥.

못난이 천사가 가시덤불에 하얗게 찔레꽃이 덮인 왼쪽을 향해 물었더니 오른쪽에서 웃음이 들려왔어요.

바닥을 덮고 낮게 깔린 세잎네잎 토끼풀과 그 위로 동글동글 토끼풀꽃과 노오란 민들레가 눈 앞으로 보였고 돌아본 등 뒤로는 부들부들 부들꽃과 노란 창포가 물둥덩이 주변을 바싹 둘러싸고 있었어요.

사막의 열기 때문일까? 차칸 천사를 너무 보고 싶어서일까? 이제는 헛소리까지 들리는 건가? 꽃들 밖에 없는데 누가 웃었을라고.

못난이 천사는 아무도 없는 풍경에 괜히 머슥해서 중얼거렸어요.

키득키득, 바보 같으니 꽃들 밖에 없는데 그럼 누가 웃었겠어?

키득키득, 당연히 우리가 웃었지!

이번에는 웃음소리에다가 목소리까지 와락들렸어요. 못난이 천사가 깜짝놀라 둘러보니 꽃들이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한껏 줄기를 휘고 잎을 흔들며 웃고있었어요. 해바라기가 방실방실 웃고 부들꽃이 부들부들 떨고있었어요. 나팔꽃이 웃음나발을 터뜨리고 수국이 수군대고 있었어요.

깜짝이야! 너희였구나. 하하하

못난이 천사는 깜짝 놀랐지만 꽃을 좋아하던 차칸 천사가 떠올라서 그냥 같이 웃어버렸어요. 꽃들은 또 그런 못난이 천사가 우스운지 한참을 더 키득키득대고 깔깔대며 웃었어요.

혹시 천사들을 보지 못했니?

꽃들이 겨우 웃음을 멈출 때 쯤 못난이 천사가 물었어요.

보았지. 보았어. 당신이 온 사막의 저편에서 하늘 가득 날아와서 저쪽 해가 태어나는 곳으로 가버렸지.

할미꽃이 굽은 목으로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들은 다들 엄청 바빴나봐. 이 사막을 건너다가 우리들이 있는 이곳을 봤으면 들러서 쉬고갈만도 한도 아무도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버렸거든.

은방울 꽃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금방울 꽃이 뎅뎅 울리는 목소리로 그래그래 했습니다.

그래도 개중에 한 천사는 우리들을 보고 오고 싶었던 거 같았는데 내려오려고 하다가 도로 가버렸지.

나리꽃 한 송이가 하는 말을 듣고 못난이 천사는 틀림 없이 꽃을 좋아하는 차칸 천사였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꽃들이 말한 천사들이 향한 방향을 보고 지금 가는 방향이 맞다고 이대로 계속 가면 차칸 천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물웅덩이에서 다시 일어났죠. 천사들이 날아간 방향의 하늘은 낮은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하얗다 못해 어두워 보일 지경이었어요. 겨우 열기를 식힌 몸이 다시 말라붙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한 차례 고개를 털고 회색 날개를 퍼득여 물기를 떨고 못난이 천사는 물웅덩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다시 떠나려는데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봐, 이보라구.

못난이 천사가 목소리가 난 곳을 보니 야자나무 그늘 깊은 곳에 핀 달맞이꽃이었어요.

무슨 일이니?

가려고? 갈 때 가더라도 날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무얼 도와줄까?

날 보라고. 안 그래도 야자 그늘에 폈는데 말이야. 저기 해바라기 때문에 하늘이 완전히 가린다고. 햇빛을 못보는 것 좋다 이거야. 난 달맞이꽃인데 밤에 달도 못본다는게 말이 돼?

그럼 어떻게 도와줄까?

멍청이! 이 정도 말했으면 눈치채야지. 해바라기를 꺾어버리라고! 내가 움직일 수 있었다면 내 손으로 저 목을 꺾었을텐데 말이야. 자 어서 가서 꺾어버리라고. 넌 어차피 바로 떠날거니까 걱정할 거 없다고.

달맞이꽃은 재차 못난이 천사를 부추겼습니다. 그 낮은 목소리는 마치 등을 떠미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못난이 천사는 해바라기 옆으로 걸어갔습니다.

못난이 천사는 여전히 방실방실 웃는 해바라기꽃을 보고 정말로 꺾어야 하나 망설이며 달맞이꽃을 곁눈질했습니다. 그때 였습니다.

이봐. 저쪽에서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가지 부탁할게 있는데.

해바라기가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못난이 천사에게 나직이 말을 걸었습니다. 못난이 천사는 괜히 놀라서 해바라기를 보았습니다.

내 아래를 보면... 아니, 그렇게 티나게 보지 말구. 나팔꽃이 내 줄기를 타고 올라오고 있잖아?

못난이 천사는 해바라기가 말한 것처럼 곁눈질로 해바라기의 굵은 줄기 아래쪽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나팔꽃 덩굴이 해바라기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고요.

네. 그렇네요. 분홍색으로 보이는 연한보라색 꽃들이 피었어요.

그렇다니까. 저녀석들이 저렇게 무겁게 메달려있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겠어? 안그래도 나는 꽃이 큰 만큼 서있는 것도 힘든 일인데 말이야. 남한테 멋대로 메달린 저 못된 나팔꽃들을 뜯어내줄 수 있겠어?

못난이 천사가 듣고 보니 진짜 해바라기 줄기에 메달린 나팔꽃이 무거워 보였어요. 그래서  무릎을 궆여 나팔꽃을 자세히 보려고 했죠. 그랬더니 나팔꽃은 마침 잘됐다고 옆에 있는 찔레꽃을 뽑아달라는 거였어요. 가시가 찔린다고. 찔레꽃은 또 맞은편의 장미가 싫다고 뽑아달라고 하고, 장미는 수국을 죽여달라고 하고, 수국은 히아신스를 사막으로 던져버리라고 했죠.

맙소사 순식간에 사방에서 서로를 죽여달라고 꽃들이 외치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꽃들이 서로 욕을 하고 저주를 하고 협박을 했죠. 못난이 천사에겐 물웅덩이주변의 풍경이 살벌하고 추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보이는 모습은 바뀐 게 없는데 말이에요.

못난이 천사는 귀를 막고 푸득 날아올랐어요. 몇번 날개짓을 하자마자 다시 열기와 모래먼지로 가득찬 공기가 덮쳐왔죠. 푸득푸득, 크기가 서로 다른 회색 날개로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을 향해 날던 못난이 천사가 돌아보자 물웅덩이 주변에는 어느새 멀쩡한 꽃과 나무가 하나도 없었어요. 뼈와 가죽, 피와살, 꽃과 나무의 시체들로 가득했죠. 좀 전까지 말갛게 반짝이던 물웅덩이도 둥둥 떠있는 시체들과 함께 검게 썩어 가고 있었고요.

훅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피냄새와 시체썩는 냄새와 죽음의 냄새가 섞인 것을 느끼고 못난이 천사는 다시 몸을 돌려 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푸득푸득.

못난이 천사는 다시 사막을 가러질러 해가 뜨는 쪽으로 날고 뛰고 걷고 한참을 갔습니다. 낮밤 없이 계속 갔습니다. 결국에는 사막의 끝이 가까워지고 세상의 끝이 보일 정도로 갔을 때였습니다. 사막과 하늘이 빛속에 뒤섞였고 멀리서 해와 달과 별이 동시에 뜨고 지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선처럼 펼쳐진 경계가 세상과 세상의 밖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곳에 흰날개를 지닌 그림자들이 경계에 피어난 꽃처럼 서있었습니다. 천사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은 세상 밖으로 떠나려는 것인지 저마다 날개를 손질하며 세상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차칸 천사!

못난이 천사는 그중에 한 천사를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무리 속에 섞여서 날개를 다듬다가 못난이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았습니다. 약간은 어색하지만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 놀란 것인지 크게 뜨인 반짝이는 까만 눈과 초생달 같은 눈썹.

못난이 천사는 우중충한 회색의 짝짝이 날개로 힘껏 날아갔습니다. 까무잡잡한 두 손을 쭉 뻗고. 푸득푸득. 당장이라도 차칸 천사가 손 끝에 닿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손이 닿으면 못난이 천사는 꼭 끌어안고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두눈이 뜨거워지고 무엇인가 얼굴에 흘렀습니다.


천사가 떠난 천국 1 by 귀우혁

천국의 한쪽에는 천사들이 모여사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은색과 금색, 청색과 녹색, 적색과 황색, 색색의 높은 건물들이 저마다 다양하고 아찔한 모양을 뽐내며 서있고 그 벽을 덮은 파란 창들은 따스한 햇살을 품고 반짝였습니다. 밤이면 거리 곳곳에 걸린 호박을 닮은 등불이 길을 비추었고 건물들도 저마다 붉고 노랗고 파란 빛을 뿜어 천사들의 도시에는 어둠이 찾아들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은 그런 빛으로 가득찬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천사들은 얼굴이 희고 고운데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습니다. 천사들은 저마다의 일로 바쁘게 도시의 여기저기로 날아다니고 뛰어다니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종종 노래하며 아름다운 제모습을 건물의 유리벽에 비춰보곤 했습니다.

화려한 도시와 아름다운 천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에게도 점이 있듯이 이 도시에도 건물들의 뒤편으로 그늘진 골목이 있었고 천사중에도 덜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은 천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천사 중에 바로 못난이 천사가 있었습니다. 다른 천사들과 달리 까무잡잡한 피부, 좌우의 크기가 맞지 않는 우중충한 회색 날개, 작은 키, 흐릿한 눈빛…

대부분의 천사들은 못난이 천사에 대해 알지 않았습니다. 짝짝이 날개로 푸드덕 푸드덕 그늘에서 그늘로 뜀뛰듯 날개짓하며 돌아다니는 못난이 천사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거든요. 제모습에 취하기도 바빴고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데 굳이 추하고 이상한 것에 관심가질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더러 우연히 못난이 천사를 본 천사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가 자신들과 같은 천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못난이 천사도 딱히 다른 천사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들은 자신과는 다른 존재니까. 그들과 자신이 사는 곳은 다르니까. 그가 말을 걸어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으니까. 못난이 천사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날 전까지는 말이에요.

그날도 못난이 천사는 빛을 피하듯이 다른 천사들을 피하듯이 그늘에서 그늘로 어둠에서 어둠으로 푸득푸득 뜀뛰듯 낮게 날고 있었어요. 골목의 저편 밝은 곳으로는 여러 예쁜 천사들이 바쁘고 분주하게 날아다녔고 그천사들의 날개짓소리 재잘대는 목소리 기쁨에 찬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못난이 천사가 있는 골목의 그늘은 조용했죠.

하루가 참 길구나. 딱히 오늘이 최악의 날이라 빨리 가길 바라는 것도 내일 좋은 일이 있어 기다려지는 것도 아니지만. 하루는 하루로 감당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야.

못난이 천사가 잠시 어느 그늘에 주저 않아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어요.

어쩌나! 그거 참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누군가가 못난이 천사의 말에 대꾸를 한 거에요. 살짝 저음이 섞인 울림이 좋은 부드러운 목소리였어요. 화들짝 놀란 못난이 천사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보니 근처의 한 낮은 건물 위에 다른 천사 한 명이 앉아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어요.

하얗고 고운 얼굴에는 조금 어색한 듯하지만 애써 환하게 웃는 미소가 걸려있고 까만 두눈은 눈꼬리가 초생달처럼 휘어있었죠. 못난이 천사가 깊이 잠드는 밤처럼 짙고 탐스런 검은 머리는 부드럽게 물결치며 늘어져있었어요.

내 목소리를 들은 거야? 내 말을 들어준 거야? 내가 보이는 거야?

못난이 천사는 깜짝 놀랐어요. 이런 일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렇게 두 천사, 못난이 천사와 그런 못난이 천사에게 말을 건네준 착한 천사 아니 차칸 천사는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어요.

난 가끔 여기에 와서 커피를 사가곤 해요.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좋거든요.

차칸 천사는 앉아있던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못난이 천사는 그제사 그 건물이 카페라는 걸 알았죠. 거의 매일 지나던 길이었지만 그늘에서 그늘로 다른 천사들을 피하듯이 지나기에 바빴던 못난이 천사는 거기에 카페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못난이 천사는 차칸 천사가 꽃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차칸 천사는 못난이 천사가 다른 천사들이 잘 모르는 도시의 외진 곳이나 바깥 지역을 잘 알고 어디에 어떤 곳이 피는지 안다는 걸 알았어요. 못난이 천사는 차칸천사의 두손이 고운것과 차칸천사가 손톱에 물을 들이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못난이 천사는 차칸 천사의 그 손이 좋았어요. 그리고 차칸 천사가 자신을 향해 던져주는 약간 어색하지만 환한 미소도 좋았어요.

그렇게 못난이 천사와 차칸 천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고, 또 며칠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서 이따금 그곳에서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가끔은 못난이 천사가 다른 천사들이 모르는 곳에서 꽃을 몇송이 가져오기도 했고, 차칸 천사를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하고 기다리기도 했어요. 차칸 천사도 못난이 천사에게 커피를 사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가끔, 사실 못난이 천사는 매일 차칸 천사를 기다렸지만, 차칸 천사는 매일 오지는 않았거든요. 그렇게 가끔 두 천사는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또 헤어지고 했어요.

여전히 차칸 천사를 제외한 다른 천사들은 못난이 천사를 보지 않았고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못난이 천사는 괜찮았어요. 못난이 천사에겐 차칸 천사가 있었으니까요.

이 마음은 무얼까? 이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일까?

그날도 못난이 천사는 차칸 천사가 오지 않을까 카페의 앞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다 돌아서며 중얼거렸어요.

그나저나 오늘은 뭔가 허전한 걸.

발걸음을 돌려 그늘에서 그늘로 뜀뛰듯 푸드덕푸드덕 날던 못난이 천사가 중얼거렸어요. 차칸 천사를 만나지 못해서 허전한걸까싶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허전한 느낌이었어요.

뭔가 다른걸 잊은게 있는 걸까?

주변을 돌아보던 못난이 천사는 그제사 알았어요. 그늘의 저편, 화려한 도시의 중앙에서 높이 날며 노래하고 웃고 이야기하는 천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뭐지? 왜 오늘따라 천사들이 안보이지? 다들 무언가 재밌는 일이 생겨서 모인 걸까? 그래서 차칸 천사도 거기에 간 걸까? 내일은 볼 수 있겠지?

텅빈 거리를 흘끗흘끗 쳐다보며 그늘에 숨듯 푸득푸득 날면서 못난이 천사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햇빛도 도시의 불빛도 닿지않는 자신의 외진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죠.

다음날 못난이 천사는 다시 차칸 천사를 만났던 카페 앞으로 가봤어요. 한참을 기다렸죠. 또 한참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차칸 천사는 오늘도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거리는 여전히 조용했어요. 다른 천사들도 여전히 보이지 않았어요.

무언가 큰 축제가 있는 걸까? 다들 모여서 며칠이고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 있는 걸까? 차칸 천사도 거기에 간 걸까? 내가 기다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런 못난이 천사보다는 다른 제대로 된 천사들하고 어울리는게 즐거운 걸까? 이젠 차칸 천사도 나를 보지 않는 걸까?

못난이 천사는 차칸 천사가 앉아있곤 하던 카페 위의 지붕이 텅 빈 것을 보고 생각했어요. 아마 몇 마디쯤은 입밖으로 나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어요.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몇날 며칠이 지났어요.

좋아! 인정할 수 밖에 없겠군. 이 도시에 남은 건 나뿐인가 보다. 다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디로 가버린 거군. 차칸 천사도 가버린 거였어! 그래, 나도 이 도시도 버림받은 거야!

못난이 천사는 손님도 주인도 없는 카페에서 맘대로 미적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서 벌컥 마시며 소리쳤어요. 카페의 테이블에도 의자에도 어느새 희끔한 먼지가 앉고 있었어요.

그날 밤이었어요. 아무도 없는 도시는 저혼자 불을 밝히고 색색의 빛으로 거리를 채웠지만 천사들이 떠난 빈자리는 붉고 노랗고 파란 빛으로도 다 채워지질 못했어요. 골목골목 깃든 진한 어둠들이 골목밖으로 넘쳐나왔어요.

못난이 천사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이도시에서 혼자였는데 새삼 혼자라는게 견디기 힘들었어요. 이게 다 차칸 천사때문이다 싶었어요.

좋아! 다른 천사들은 몰라도 차칸 천사는 어디로 갔는지 꼭 찾아내야겠어. 그리고 꼭 물어볼거야! 말할거야!

못난이 천사는 다짐하면서 떠났어요. 도시의 외진구석에 있는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거리의 그늘에서 그늘로, 푸득푸득 짝짝이 날개로 뜀뛰듯 날아, 천사들이 떠난 도시를 떠났어요. 차칸 천사가 없는 도시를 떠났어요.

도시를 벗어나면서 부터는 그늘이 없어서 많이 어색했어요. 햇빛을 오래 쬐니 눈이 아찔하고 피부도 따끔한 것 같았어요. 그래도 못난이 천사는 도시를 떠나 먼 곳으로 향했어요.

멀리서 돌아본 천사들의 도시에서는 햇빛 속에 은색과 금색, 청색과 녹색, 적색과 황색의 건물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우뚝 서 있고 파아란 창문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예쁜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그모습은 꼭 색종이로 만든 것처럼 얇고 가볍고  그리고 속이 빈 것처럼 보였어요. 아니, 사실 천사들이 떠나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난이 천사마저 떠나서 정말 텅 빈 도시였어요.


못난이 천사는 천사들이 떠난 도시에서 점점 멀어졌어요. 도시를 둘러싸듯 펼쳐진 초원에는 따로 길은 없었지만 못난이 천사는 우중충한 회색 짝짝이 날개로 푸득푸득 날아서 건넜어요. 이따금 작은 숲이 나오면 그 그늘에서 햇볕에 지친 눈과 몸을 쉬곤 했어요. 그럴 때는 숲의 어둠 속에 숨은 새들의 지저귐, 그늘에 쌓인 나뭇잎의 바스락거림이 못난이 천사에게 소곤대곤 했죠.

저건 뭘까? 날개가 있으니까 새가 아닐까? 저 우중충한 회색 짝짝이 날개를 봐, 저런 새는 없어! 그럼 천사나 악마일까? 천사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는 거니? 백조보다 하얗고 공작보다 화려한 날개로 노래하며 날아다니는 그 모습을 본적이 없나보구나? 그럼 설마 악마인가? 무슨 소리야? 저녀석한테 뿔이나거나 꼬리가 달리지도 않았잖아? 그럼 저건 뭘까? 우중충한 날개에 꾀죄죄한 모습 정말 못난이처럼 생겼구나. 아마 외톨이 괴물이 아닐까? 뒤죽박죽으로 생긴 괴물 중에서도 떨어져나온 못난이 외톨이…

못난이 천사는 숲이 바람이 수군대는 것을 들으며 피식 웃었어요. 익숙했거든요. 차칸 천사의 고운 목소리에 잠시 잊었지만 본래 그가 듣던 목소리들은 다 그랬어요. 비웃음, 놀림, 두려움, 놀람, 무시와 외면… 못난이 천사는 차칸 천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어요. 수군거림이 딱히 맘 상하고 듣기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차칸 천사의 따스하고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딱히 특별한 건 아니더라도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차칸 천사가 부르는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느새 어둠이 내려 앉은 숲은 조용했어요. 새들도 잠을 자는지 조용했고 바람도 불지 않았고 나뭇잎도 바스락거리지 않았어요. 오직 짙은 어둠과 못난이 천사만이 있었죠.

피식 웃고 못난이 천사는 어둠 속으로 푸득 날아올랐어요. 하늘에는 파란 초생달이 높이 걸려 있고 달 주변으로 어둠도 파랗게 물들어 있었죠. 하늘을 훑다보면 듬성듬성 별빛도 반짝였어요. 뿌우~ 멀리서 하늘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달이 꼭 웃음같구나.

못난이 천사는 달을 향해 손을 뻗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어둠에 잠긴 거친 손은 달에 닿지 않았어요. 눈 앞에 있어도 아득하다는 것도 꼭 웃음 같았죠.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차칸 천사는 어디로 간 걸까? 내가 못난이가 아니었다면 나만 남겨두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들을 찾을 수 있을까? 차칸 천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찾아서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지? 뭐라고 말을 하지?

못난이 천사는 계속 생각하며 계속 푸득푸득 날고 또 가끔 날개가 지치면 걸었어요. 밤이 지나고 낮이 오고 낮이 지나고 밤이 오고, 초원을 지나고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었어요. 햇볕이 뜨겁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또 눈이 왔어요.


그렇게 못난이 천사는 몇날 며칠이고 계속 떠돌았어요. 방향도 시간도 뒤섞인 채로 한참을 떠돌다가 높고 험한 바위산을 만났어요. 푸득푸득 날개로 날아올랐지만 날개의 힘이 다 하도록 산중턱까지 밖에 가지 못할 정도였죠. 그래서 못난이 천사는 풀한포기 없는 비탈지고 험한 길을 비틀비틀 걸어올라갔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하늘이 가까워지고 공기가 차가워졌어요. 마침내는 공기중에 반짝반짝 눈가루들이 섞여 떠돌기 시작했어요.

못난이 천사는 회색날개로 몸을 꽁꽁 싸매느라 이제는 푸득푸득 날고싶어도 날 수도 없었어요.

피가 식는 기분이구나. 하지만 차가운 건 익숙하니까. 언제나 날 향하던 시선들은 차갑지 않았던가. 차가운 말들이 날카로운 얼음조각들처럼 심장을 헤집어도 내심장은 이제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지 않던가. 찬바람쯤이야! 눈보라쯤이야!

눈가루가 섞인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할퀴는 것을 느끼며 못난이 천사는 소리쳤어요.

정말? 정말 그럴까? 그런 사람이… 아니, 그런 새가… 아니, 그런 괴물이 있을까?

누군가가 못난이 천사에게 대답했어요. 그 누군가는 못난이 천사를 뭐라고 불러야할지 몰라서 당황했지만 이내 괴물이라고 부르기로 했나봐요. 짝짝이 회색 날개로 몸을 싸매고 늪 같은 눈만 희끔하게 빛내며 비틀비틀 걷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생각할만도 했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못난이 천사야. 나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쯤이야 익숙한 일이지. 하지만 네가 나를 괴물이라고 부르면 나는 널 무어라 불러야할까?

못난이 천사는 산 위쪽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대를 발견하고 말했어요.

거기에는 천사들 중 가장 키가 큰 천사보다도 키가 두배는 되어보이고 덩치는 십수배는 될 것 같은 눈사람이 서있었죠. 엄청 커다란 둥근 몸통에 조금 커다란 둥근 머리, 통나무  숯을 붙여 만든 눈코입, 다리는 없지만 앙상한 나무를 그대로 심은 것 같은 두팔. 그런 눈사람이 저만치 위쪽에서 못난이 천사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괴물은 괴물인데 멍청한 괴물이었군! 보이는 그대로! 나는 눈사람이지. 하하하!

눈사람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숯으로 만든 입을 활짝 벌려 웃었어요.

나는 괴물이 아니라 못난이 천사야. 네가 날 괴물이라고 부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래, 눈사람아 그러면 뭐가 정말이냐는 거지?

차가운게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는 말이지. 못난이 괴물, 멍청한 천사! 그게 작은 새건 커다란 뱀이건 잔인한 살인자건 용감한 기사건 말이야. 살아있는 것들은 다 똑같다고. 나는 이 높은 산에서 엄청 오래 지냈거든. 아니 이 산에서밖에 지내지 못하니까. 네가 보는 것처럼 눈사람이니까. 나는 여기서 계속 보아왔어. 작은 새가 눈보라에 휩쓸려 빳빳하게 얼어붙는 거를, 불을 뿜던 커다란 뱀이 차게 식어 눈에 덮여 언덕이 되는 걸 보았지. 마음이 아무리 차갑던 뜨겁던 소용이 없어. 얼음으로 된 심장을 자랑하던 살인자도 더 차가운 세상에 밀려 이곳으로 도망왔다가 얼음조각이 되었지. 불타는 심장으로 살인자를 추격하던 용감한 기사도 동료의 배반과 약혼자의 배신에 심장이 식고 얼어 붙었지. 진짜 추위는 그런거야. 피가 식고 심장이 얼고 몸이 굳고 생명이 사라지지. 그리고 여기가 바로 그런 진짜 추위가 지배하는 곳이고! 하하하!

눈사람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숯으로 만든 입을 활짝 벌려 웃었어요. 못난이 천사의 눈에는 그 웃음에 눈보라가 섞인 것처럼 보였어요.

그럼 나는 돌아가야겠구나. 천사들을, 차칸 천사를 찾기 전에는 얼음덩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눈사람아, 혹시 너는 천사들이 날아가는 걸 보지 못했니?

천사?

그래 나처럼 생긴… 아니, 나처럼 날개가 있지만 나하고는 다른… 곱고 예쁘게 생긴데다 수시로 웃고 노래하며 커다란 하얀 날개로 날아다니는 그런 천사들 말이야.

못난이 천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눈사람에게 물어보았어요.

아! 그것들! 보았지. 처음엔 새떼가 날아가는 줄 알았어. 그래, 네가 온 그쪽 방향에서 날아왔지.

눈사람이 나뭇가지 팔로 커다란 둥근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어요. 눈가루가 후둑후둑 떨어졌죠.

오! 보았구나. 그렇다면 그들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려주겠니?

깜짝 놀란 못난이 천사는 간절히 물어봤어요. 눈사람은 머리 긁던 것을 멈추더니 으음 하고 뭔가 생각을 했죠. 숯으로 된 눈코입이 얼굴 가운데로 몰렸어요.

좋아. 알려주지.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하지만 대신 나를 들고 날아준다면 말이야? 나는 이곳에서 아주 오래지내왔거든. 여기서 벗어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벗어날 수 없을 테고 말이야. 하지만 네가 도와준다면 저 위로 날아올라볼 수는 있겠지.

눈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못난이 천사를 봤어요. 들어주지 않으면 절대 알려주지 않겠다는 표정이었죠.

못난이 천사는 커다란 눈사람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푹 쉬었어요. 어쩔 수 없었죠. 꼭 차칸 천사를 찾아야했으니까. 못난이 천사는 몸을 덮고 있던 짝짝이 회색 날개를 활짝 펴서 한차례 펄럭였어요. 그리고 손을 내밀었죠. 눈사람은 숯으로 된 눈코입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고는 앙상한 가지로 된 팔로 못난이 천사의 손을 꽉 잡았어요.

못난이 천사는 힘껏 회색날개를 푸득댔어요. 커다란 눈사람이 덩치가 작은 못난이 천사에게 매달려 뒤뚱뒤뚱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됐다. 됐어! 이 눈과 얼음의 세상에서 벗어났다고! 하하하! 저기봐! 저 멀리  저 아래로 세상이 보여. 저 녹색 숲과 들, 저 파란 강! 세상이란 건 색으로 가득하구나! 하하하!

눈사람은 못난이 천사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소리치고 웃었어요.

이봐 눈사람! 천사들은, 차칸 천사는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겠니?

좋아. 마지막이니까 알려주지. 그 하얀 것들은 네가 온 방향에서 날아와서 태양이 떠오르는 쪽으로 날아갔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날아서 멈추지도 않고 엄청 빠르게 가버리더군.

마지막?

눈사람의 무게를 버티느라 팔이 날개가 뻐근한 걸 느끼던 못난이 천사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어요. 눈사람이 앙상한 나뭇가지 팔을 마구 흔들고 몸부림쳤어요.

그러지 마!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하하하! 멍청한 괴물 같으니! 바로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저런 세상을 봤는데 눈과 얼음의 세계에서 앞으로 끝나지 않는 날동안 지내라고? 그럴 수 있겠어?

눈사람은 껄껄 웃으며 못난이 천사의 팔을 쳐내고 허공으로 떨어져내렸어요. 저만큼 내려가는 동안 눈으로 된 몸과 머리가 떨어지고 가지로된 팔이 흩어지고 숯으로 된 얼굴이 하나 둘 흩어졌어요.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허공에는 반짝이는 눈가루와 껄껄대는 웃음만 남았어요.

못난이 천사는 갑자기 가벼워진 탓에 허공에서 휘청이며 그 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푸득푸득 아래로 내려왔어요. 눈과 얼음으로 덮인 높고 험한 바위 산으로.


못난이 천사는 눈사람이 알려준 천사들이 향했다는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을 가능하며 눈덮인 높고 험한 바위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눈사람은 왜 뛰어내린 걸까?

못난이 천사는 그마음을 알것 같기도 모를것 같기도 했어요. 그저 허공에서 흩어지던 눈가루가 자꾸 눈 앞에 아른 거리는 것만 같았어요. 닿을 듯 만져질 듯 떠오르지만 닿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차칸 천사의 모습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온 못난이 천사는 회색날개에 아직도 내려 앉은 서리를 한차례 털어내고 주변을 돌아봤어요. 산의 다른 방향으로 내려온 탓에 주변의 모습이 많이 달랐거든요.

커다란 나무들이 우뚝우뚝 자라서 하늘을 덮듯이 가지를 펼치고 있었어요. 이끼와 잔풀이 깔린 길이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구비구비 이어졌고요. 못난이 천사는 다시 날개를 접고 숲길을 걸었어요. 숲은 짙은 나무그림자와 드문드문 새어드는 햇빛이 뒤섞여 있었어요.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죠. 혹시나 나무들이나 새들이나 숲의 동물들이 자신을 보고 또 놀리고 비웃고 욕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못난이 천사는 걸음을 옮겼어요.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얼마나 숲길을 걸었을까, 못난이 천사 자신의 발걸음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못난이 천사도 안심을 하고 허리를 펼 때였어요.

바쁘다! 바빠! 어이, 거기 길 막지 말고 비켜! 비키라니까!

뒤쪽에서 급한 목소리와 두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란 못난이 천사가 돌아보니 뭔가 거뭇한 것이 눈 앞으로 휙 덮쳐들었어요. 못난이 천사는 깜짝놀라 눈을 질끈 감고 부딪힐 것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쾅하고 부딪혀 날아갈 거란 생각하고는 달리, 퐁하고 가볍고 부드럽고 복실복실한게 가슴팍에 안기듯이 와 닿는 느낌이었어요.

뭐지 하고 못난이 천사가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니까 회색털에 흰 얼룩 무늬가 있는 토끼가 얼굴을 찌푸리고 바닥에 쓰러져있었어요. 타이트하게 입은 까만 연미복이 흐트러지고 머리에선 검정 실크햇이 벗겨져 긴 귀가 쫑긋 드러나있었어요.

뭘 보고 있토끼? 남을 넘어뜨렸으면 일으켜줘야할 거 아니토끼?”

토끼는 얼굴을 찌푸린채로 흰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어요. 못난이 천사는 당황한 채로 그 손을 잡아 토끼를 일으켜주었어요. 토끼는 일어나서 연미복 자락을 툭툭 털고 옷깃을 여미고 실크햇을 고쳐쓰더니 다시 뛰어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누군가 제비꼬리 같은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다시 쿵 넘어졌어요.

누구냐토끼? 또 당신이야토끼?

토끼는 못난이 천사가 옷자락을 쥐고 있는 걸 보고 동그란 두눈을 가늘게 뜨고 인상을 썼어요. 못난이 천사가 보기에 그리 무서워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에요.

왜이러는거냐토끼? 난 바쁘다토끼? 이럴 시간이 없다토끼!

혹시 천사들이 날아가는 걸 보지 못했니? 그러니까 이런 날개가, 아니 내 날개랑은 다르게 하얗고 모양도 멋지지만, 그런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 날아가지 이쪽으로 않았었니?

맙소사토끼! 그런 것 때문에 날 멈춘 거냐토끼? 난 바쁘다 토끼!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한테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꼭 좀 부탁할게.

에휴, 난 지금 도망치는 중이란 말이다토끼. 사냥꾼이 쫓아오고있단 말이다토끼!

토끼는 벗어나려고 못난이 천사가 쥐고있는 옷자락을 당기며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외쳤어요. 하지만 못난이 천사가 꽉 잡은 옷자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답니다.

사냥꾼? 그가 널 헤치지 못하게 막아줄게. 아니 그를 멀리 데리고 날아가 줄 수도 있어. 그러니 하얀 날개의 천사들이 지나갔는지 알려주렴. 난 그 천사들 중에 차칸 천사를 꼭 찾고 있단다.

그러자 토끼는 안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휙휙 저었어요.

아니, 아니, 그럴필요는 없토끼! 사냥꾼에게 잡혀서 죽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냥꾼이 날 쫓지 못하는 걸 원하는 건 아니다토끼! 참견하지 말고 빨리 놔달라토끼! 그래 하얀 것들, 날개달린 하얀 것들이 며칠 전에 저쪽으로 날아갔다토끼. 됐냐토끼?

토끼는 오물오물 말을 하고는 어서 놔달라는 듯이 못난이 천사가 잡고 있던 연미복 자락을 몇번 당겼어요. 결국 못난이 천사는 머슥한 얼굴로 손을 놓았습니다.

그래, 그래 미안.

못난이 천사가 사과하는 것도 다 듣지 않고 토끼는 바쁘다를 연발하며 숲의 저편으로 뛰어가버렸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고 못난이 천사가 토끼가 말한 천사들이 날아갔다고 하는 방향으로 걸음으로 옮기려고 할 때였습니다.

혹시 토끼가 지나가는 걸 봤소?

등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못난이 천사는 깜짝 놀라 돌아밨습니다. 거기에는 사냥모를 쓰고 왼쪽 어깨에 장총을 둘러멘 흰머리에 하얀 턱수염의 나이든 사내가 서있었습니다. 누가보더라도 사냥꾼, 늙은 사냥꾼이었습니다.

천사양반 혹시 보았소? 천사양반 맞지요? 날개가 있는 걸 보면 천사 아니면 악마일텐데 악마로는 보이지 않는 구료. 그래, 천사양반은 토끼 한 마리 보지 못했소?

아, 이 사람이 토끼가 말한 사냥꾼이구나 하고 못난이 천사는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저쪽으로 막 뛰어 가던걸요.

못난이 천사는 토끼가 사라진 반대방향을 가리켰어요. 늙은 사냥꾼은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못난이 천사를 보고 피식 웃었어요.


빵 빵 by 귀우혁

러시아의 어느 시골 마을에 덩치 크고 잘생긴 차력사와 예쁜 곡예사 부부가 들렀어요. 그들은 포장이 달린 마차를 타고 왔는데 그 포장 안에는 곡예에 쓰는 쉽게 끊어지는 사슬과 여러 곡예 도구들 그리고 그 부부의 어린 아들이 타고 있었어요. 어린 아들은 차력사와 곡예사 부부의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못생긴데다 말을 더듬는 바보에 허리가 굽은 꼽추였어요. 부부를 닮은 거라곤 차력사처럼 팔다리와 허리가 굵고 곡예사처럼 맑은 눈을 가졌다는 정도였죠.
사람들은 부부에게 이 흉측한 아이가 정말 두 사람의 아이냐고 물었죠. 예쁜 곡예사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차력사는 넓은 가슴을 주먹으로 한 차례 두드리고는 말했죠. 원래는 신이 주신 예쁘고 건강한 아이였지만 두 사람이 이리저리 떠도느라 잘 먹지를 못하고 병이 걸려도 치료를 못한데다 곡예 흉내를 내다 허리를 다쳐 꼽추가 되었다고요. 곡예사가 옆에서 말을 보탰어요. 하지만 아주 착하게 자란 아이라고. 거기다 적게 먹으면서 힘든 일도 잘한다고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다음날 알게됬죠. 부부가 아이를 마을밖의 버려진 집에 두고 가버렸다는 것을. 마을사람들은 곤란했어요. 농사도 잘되고 집집마다 소와 닭과 돼지가 잘 자라고는 있었지만 남의 아이를, 그것도 이런 흉측한 아이를 돌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아이가 죽으면 땅을 파고 묻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싫었고요. 그래서 그냥 아이가 버려진 집 앞에 지저분한 나무통을 하나 두고 가축들에게 주던 여물이나 모이의 찌끄레기를 던져두곤 했어요.
하지만 이 흉측한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헤헤 웃으며 그런 것들을 먹고 잘만 버티는 거였어요.
하루는 촌장이 아이에게 네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고 있으니 너도 마을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니? 하고는 낡은 도끼 한자루를 던져주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고 시켰어요. 흉측한 아이는 헤헤 웃고는 낡은 도끼를 들고 꾸불텅 꾸불텅 걸어서 산으로 갔어요.
다음날 촌장은 마을 공터 한켠에 작은 산처럼 쌓인 손질이 잘 된 땔감을 보게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촌장에게 이게 왠 땔깜이냐고 물어고 촌장은 껄껄 웃으며 싸게 팔겠다고 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싼 값에 땔감을 사고는 힘든 일을 덜었다고 즐거워 했고 촌장은 쉽게 공돈이 생겼다고 즐거워 했어요. 버려진 집안에서 찌꺼기 음식을 먹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름 즐거웠고요.
그 뒤로도 그런 날들은 계속 되었답니다.
어떤 날은 촌장이 돌밭을 골라서 밀밭으로 만들라고 했고, 어떤 날은 마을 밖 개천에 다리를 놓으라고 했고, 어떤 때는 숲의 늑대나 곰을 잡아달라고 했어요.
흉측한 아이는 헤헤 웃으며 촌장이 시키는 일들을 열심히 했답니다. 가끔은 힘들어서 쓰러지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아이는 튼튼해서 금방 나아서 다시 일을 했어요.
그리고 촌장은 매일 매일 부자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도 점점 살기 좋아졌죠. 마을에는 웃음이 가득했어요. 흉측한 아이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도 즐거웠어요. 마을 사람들은 어쩌다 길에서 아이를 보면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지고 여자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피하곤 했지만 그래도 아이는 즐거웠어요. 흉측한 아이는 즐거워서 헤헤 웃었어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이 시골마을에 외부에서 이사를 온 사람들이 생겼어요. 도시에서 빵가게를 하다가 이사온 늙수구레한 제빵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두사람의 예쁜 딸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하얗고 폭신한 빵을 굽는 제빵사 가족을 환영했어요. 마을 총각들은 빵보다는 예쁜 딸을 환영했고요.
그리고 예쁜 딸은 어느날 갓 구운 빵들을 바구니에 담고 배달을 가다가 흉측한 아이를 발견했어요. 아이는 무엇에 쓰는 것인지 무거운 돌을 굽은 허리에 얹고 땀을 흘리며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 뒤에는 마을의 꼬마들이 쫓아가며 놀리고 있었고요.
예쁜 딸은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못된 꼬마들을 쫓아내고는 흉측한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었죠? 하지만 흉측한 아이는 어버버 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는 그냥 헤헤 웃었어요.
예쁜 딸은 흉측한 아이가 바보인 걸 알고는 딱하게 여기고는 배달하려던 빵 중에 아직 따뜻한 빵 하나를 건네 주었어요.
흉측한 아이는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돌을 내려놓고 지저분한 두손을 지저분한 옷에 슥슥 닦고는 빵을 받았어요. 손이 따뜻했어요. 좋은 냄새가 났어요. 늘 먹던 가축 여물의 찌꺼기에서는 느낄 수 없던 것이었죠.
흉측한 아이는 예쁜 딸을 물끄러미 보았어요. 자신을 보며 딱하다는 듯한 눈으로 그러나 애써 미소짓고 있었죠. 그건 자신을 보며 놀리거나 욕하거나 피하던 마을 사람들의 표정과는 달랐어요. 이런 저런 일을 시키던 촌장의 표정과도 달랐어요.
흉측한 아이는 그냥 헤헤 웃었어요.  

그렇게 예쁜 딸은 빵 한조각을 주고 갔고 흉측한 아이는 빵을 낡고 지저분한 옷 깊숙이 넣고는 다시 무거울 돌을 낑낑 짊어졌어요.
하루하루 한달두달 한해두해 시간이 갔어요. 예쁜 딸은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라났고 흉측한 아이는 여전히 흉측한 아이였어요. 이따금 예쁜 딸이 빵을 주긴 했지만 일이 힘들어서 였는지 그정도의 빵으로는 부족한 것인지 꼽추여서 그런 것인지 흉측한 아이는 팔다리가 더 굵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였어요. 그래서 더 동네사람들은 흉측한 아이를 이상하고 괴상하게 생각해서 놀리고 괴롭히고 피했죠. 하지만 그 사이에도 촌장은 여전히 흉측한 아이에게 일을 시켰고 아이는 일을 했고 촌장은 부자가 됬고 마을은 살기 좋은 곳이 되었어요.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예쁜 딸과 늙수구레한 부모의 빵가게 앞에 이따금 누군가 들에서 따온 꽃을 두고 가곤 했다는 정도. 마을은 평화로웠고 번창했죠.
그리고 예쁜 딸의 나이든 제빵사 부모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란 딸이 좋은 곳에 시집가기를 바라기 시작했어요. 마을 사람들도 마음씨 착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인 예쁜 딸이 어울리는 남편을 맞기를 바랬고요. 그래서 모두들 촌장의 아들과 예쁜 딸이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촌장은 마을 제일의 부자였고 마을을 위해 많은 일을 했거든요. 못쓰던 돌밭을 좋은 밀밭으로 바꾸고 무너진 다리를 고치고 숲의 위험한 짐승들을 잡아주었어요. 촌장이 어떻게 그런일을 다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그런 일들을 아주 싼 값에 해준 것은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촌장과 제빵사 부모는 서로의 아들과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기 시작했답니다.
예쁜 딸은 이따금 빵가게 앞에 놓여있던 꽃들을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촌장의 아들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의 결혼이 결정되고 결혼식을 며칠 남겨둔 날이었어요. 자신의 신부가 될 사람을 보려고 그날도 빵가게로 가던 촌장의 아들은 누군가 빵가게 앞에 몰래몰래 다가가는 것을 보았어요. 처음엔 도둑인가 생각했는데 가만보니 자기가 어릴 때부터 놀리고 괴롭혔던 흉측한 아이였어요. 자세히 보니 흉측한 아이는 손에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꽃을 한아름 들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빵가게 문 앞에다 놓고는 헤헤 웃더니 누가 볼새라 후다닥 가버리는 것이었어요.
촌장의 아들은 옳다구나 하고 그 꽃을 집어들고 빵가게의 문을 두드렸죠. 문을 두드리는소리에 문을 연 예쁜 딸은 촌장의 아들이 꽃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본 거에요. 자주 문 앞에 놓여있던 바로 그 꽃을 말이죠.
아! 당신이었군요. 왜 말하지 않았나요? 예쁜 딸은 환하게 웃으며 촌장의 아들을 집안으로 맞아들였어요.
그때 흉측한 아이는 괜히 한 번 다시 길을 거슬러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았어요. 자신의 꽃을 건네주는 촌장의 아들과 그런 촌장의 아들에게 환하게 웃는 예쁜 딸을요. 그래서 흉측한 아이는 헤헤 웃었어요. 예쁜 딸이 가끔 자신에게 주어주던 그 안쓰럽다는 눈빛이나 애써 짓던 웃음과는 너무나 다른 웃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헤헤 웃었어요.
그렇게 촌장의 아들과 예쁜 딸은 결혼을 했어요. 조금 지나고 예쁜 딸은 촌장의 아들이 사실 별로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빵 굽는 재주 밖에 없는 자신과 지내는 것보다는 밖에서 화려하게 노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마지막으로 받았던 꽃이 꽃병에서 시들고 말라붙고 먼지가 쌓이고 그 사이에 두사람은 몇번인가 싸우고... 마침내 어느날 남편인 촌장의 아들과 크게 싸운 예쁜 딸은 집을 나와서 늙은 부모님이 하는 빵가게로 도망치듯 와버렸어요.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는데도 촌장의 아들은 예쁜 딸을 달래서 데려가려고 오지도 않았어요. 너무 화가 나고 속 상한 예쁜 딸이 늙은 부모 대신 빵가게의 문을 열었을 때였어요. 가게 문 앞에 노란 들꽃이 한가득 놓여있는 거에요.
아!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아! 그 못된 사람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 거구나! 꽃을 좋아하지도 않는 그 사람이 내게 꽃을 가져다 주었을리 없지. 그러면 이 꽃은 누가 가져다 놓은 걸까?
예쁜 딸은 너무나 궁금했어요.

남편인 촌장의 아들이 사과하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예쁜딸은 늙은 제빵사 부모님을 도와 빵가게 일을 하면서 틈틈이 누가 꽃을 가져다 놓는지 살펴보기로 했어요. 첫날은 틈틈이 빵가게 창문으로 바깥을 살펴보다가 젊고 씩씩한 마을의 경비대장이 오는 것을 보았어요.

아! 설마 저 사람일까? 훤칠한 키에 단단해보이는 넓은 가슴, 단정한 콧수염이 경비대장 제복하고 참 잘 어울리는 구나! 저 사람이 그 사람일까?

하지만 경비대장은 예쁜 딸에게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루에 빵만 열심히 담으며 엉뚱한 소리만 할 뿐이었어요.

아름다운 아가씨! 아가씨는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는 아니겠지? 황제가 있는 모스크바에는 요즘 공산주의 반역자들이 말썽을 일으킨다던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는 요 몇년 이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걸요? 공산주의자라는 말도 처음 들어요.

예쁜 딸은 실망했지만 다시 열심히 반죽을 두드리고 빵을 구우며 창 밖을 살폈어요.

다음날이었어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인 걸까? 생각하며 예쁜 딸은 창 밖을 틈틈이 살폈어요. 마침 저만치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곱상한 얼굴에 눈부신 금발 고수머리를 목덜미까지 늘어뜨리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등에는 전통악기인 발랄라이카를 메고 있는 젊은 남자였어요. 그남자의 화려한 옷에는 가슴팍에 파란 꽃이 한송이 꽂혀있기까지 했어요.

아! 저사람인가? 저 사람은 종종 마을에 들르는 떠돌이 악사가 아닌가! 저 사람이 그 사람일까? 하지만 저 사람은 마을마다 애인을 두고 있는 바람둥이라던데... 아 저 사람이 그 사람이고 내게 고백을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예쁜 딸이 고민하는 사이 문이 열리고 떠돌이 악사가 들어왔어요. 아름다운 아가씨 빵 냄새가 참 좋군요~ 떠돌이 악사는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어요.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다니 이게 다 귀족과 자본가들의 착취 때문이랍니다.

네? 악사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지만 예쁜 딸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혁명이니 평등이니 하는 것은 뭔가 너무 먼 이야기로만 들렸거든요. 하지만 악사가 자신에게 꽃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악사는 예쁜 딸이 자기 말을 이해 못하는 것 같자 제일 싼 빵만 한조각 사고는 그대로 돌아가버렸어요. 예쁜 딸은 다시 실망했지만 곧 기운을내고 열심히 반죽을 두드리고 빵을 구웠어요.

대체 누구일까? 남편은 왜 찾으러 오지 않는 걸까? 사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걸까? 이대로 계속 남편이 오지 않고 꽃을 준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하지? 예쁜 딸이 생각하며 창 밖을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실 그 사이에도 흉측한 아이는 몇번이나 품에 노오란 꽃을 잔뜩 안고 빵가게의 밖에서 기웃댔답니다. 다만 그가 나이를 먹고도 아이의 키인데다가 꼽추인 탓에 창밖을 보는 예쁜 딸이 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그때에 빵가게 건너편 골목의 어둠속에서는 그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자꾸 창가를 기웃거리며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는 예쁜 딸의 웃음기와 흥분이 섞인 얼굴, 창문 아래를 구부정 지나가 문앞에 조심스레 들꽃을 한아름 내려놓는 흉측한 아이. 그들을 보고 차갑게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흥! 저것 보라지! 남편을 버리고 나가서는 신나하는 꼴이라니! 빵굽는 재주 밖에 없는 것이 남편의 식탁에 빵이나 올릴 것이지. 그리고 저건 또 무어야? 저 흉측한 것이 저 못난 여자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흥! 제 분수를 알아야지. 사람이 되다만 괴물 같은 저런 것을 좋아할 여자가 세상에 어딨다고. 하긴 못난 여자하고 흉측한 것이 라면 짝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저런 것한테 부인을 뺏기면 사람들한테는 내가 얼마나 우습고 못나게 보이겠는가? 그럴 수야 없지.

촌장의 아들은 그러고는 어두운 골목에서 나와 빵가게로 저벅저벅 걸어갔어요. 꽃을 내려놓고 기웃대던 흉측한 아이는 촌장의 아들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도망갔어요. 마을의 못된 아이들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많이 돌을 던지던 아이, 끝까지 쫓아와서 놀리고 괴롭히던 아이가 촌장의 아들이었거든요.

쾅쾅쾅!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예쁜 딸은 물론이고 안에서 일하던 늙은 제빵사 부부까지 가게로 나왔어요.

얘야 이게 무슨 일이니? 깜짝 노부모가 물었지만 예쁜 딸도 영문을 몰라 고개를 저었어요.

못난 마누라야 어서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겠어! 얼마나 더 날 망신시키려는 거야!

예쁜 딸은 남편인 촌장의 아들이 사과를 할 생각은 커녕 잔뜩 화가 난 것을 알고 파랗게 질려서는 문고리를 꽉 잡았어요. 어차피 잠겨있어서 잡을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에요.

그럼 이제 술을 마시느라 늦게 들어오거나 다음 날 들어오는 건 안 할 건가요?

예쁜 딸은 문고리를 잡은채 외쳤어요.

흥! 못난 것!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 난 촌장의 아들이라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으려면 술자리도 있기 마련이지. 속 좁은 여인네 같으니!

그럼 사업을 하는 술자리에 왜 여자들을 부르는 거죠? 내가 모를 줄 알았나요?

흥! 못난 것! 밖에서 사람을 만나다보면 남자들도 있고 여자들도 있는 거지!

대체 여자들하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객실로 올라가서 밤을 새며 사업 이야기를 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흥! 못난 것! 빵굽는 재주 밖에 없는 것이 질투를 하는 거냐? 네가 좀 더 잘 했으면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났겠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에요? 좋아요. 그럼 술을 마시고 때리지 않겠다고만 약속해줘요! 그럼 돌아갈테니.

두꺼운 나무문이 마구 흔들리며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문을 두손으로 꽉 잡은 예쁜 딸은 어느새 뜨거운 눈물로 뺨을 적시며 외쳤어요.

흥! 못난 것! 좋아 그런 약속이라면 백번이라도 해주지. 하지만 술을 마시고도 약속을 기억할 지는 모르겠는 걸.

맙소사! 그런... 예쁜 딸은 부들부들 떨었어요. 그때 지켜보고 있던 제빵사 노부부중에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었어요.

이런이런, 딸아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하지만 남자들이란 젊을 때 다 조금은 그런단다. 그래도 네 남편은 촌장의 아들이 잖니? 틀림없이 네 남편은 촌장인 아버지를 닮은 훌륭한 사람이 될 거고 사업을 물려받을테니 그저 꾹 참고 같이 살렴. 나와 네 아버지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잖니? 그러니 앞으로 널 돌봐줄 사람은 네 남편 밖에 없단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고리를 쥐고있는 딸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고 문을 열었어요.

못난 딸때문에 사위가 고생이 많구려. 다 교육을 잘 못시킨 우리 잘못이니 그러려니 하시구려. 넌 어서 네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빌거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에 눈물 자국이 가득한 딸의 등을 떠밀었어요.

흥! 촌장의 아들은 입가를 비틀어 웃고는 거칠게 예쁜 딸의 팔목을 잡고 끌었어요. 예쁜 딸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털래털래 촌장의 아들에게 끌려갔어요.

그때에 아까 촌장의 아들이 숨어있던 빵가게의 반대편 골목에서 작고 구부정한 그림자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골목의 어둠에 잠긴 그림자는 뒤틀리고 굽어있었는데 오로지 두 눈만은 맑고 예뻤어요. 그리고 그 두눈은 동그랗게 한껏 뜨여있었는데 놀라고 무섭고 걱정된다는 것 같았어요. 저 멀리 끌려가며 점점 작아지는 예쁜 딸의 뒷모습을 담고 있던 두눈은 그 모습이 사라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섰어요. 그리고 헤헤 웃었어요. 약간은 힘이 없고 슬픈 웃음이었어요.

그리고 하루하루 한달두달 한해두해 시간이 갔어요. 촌장은 흉측한 아이에게 일을 시켰고 마을 사람들은 흉측한 아이를 피했고 촌장의 아들은 다른 살림을 차렸고 예쁜 딸은 빈집에서 슬픈 얼굴로 창문만 바라보며 보냈어요. 이따금 흉측한 아이는 노오란 들꽃을 들고 촌장의 아들과 예쁜 딸이 사는 집 근처를 기웃거렸지만 촌장의 아들이 괴롭히던 것이 생각나서 가까이 가지는 못했어요.

촌장은 점점 더 힘든 일을 시키고 흉측한 아이는 지쳐쓰러지거나 다쳐서 눕는 날들이 늘었어요. 촌장은 점점 더 부자가 되서 땅을 사서 소작을 주고 고용인을 늘렸어요. 마을 사람들은 촌장에게 작은 땅이나 거친 땅을 비싸게 팔고 대신에 크고 기름진 땅을 빌릴 수 있어서 좋아했어요. 촌장이 늑대나 곰 같은 위험한 짐승을 잡고 가죽을 팔아주거나 험한 산의 약초를 캐서 싸게 팔아주기도 했고요. 흉측한 아이는 절벽에서 약초를 캐다 떨어져서 한쪽 다리를 절게 됬지만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풍족해진 생활에 바빠서 그런 것 까지는 보지 못했어요. 버려진 집에 놓인 흉측한 아이에게 음식찌거기를 주기 위한 나무통도 점점 잊혀갔죠.

이따금 가슴에 붉은 꽃을 단 악사가 마을에 들러서 경비병들 몰래 부르조아나 프롤레타리아, 착취와 평등 그리고 혁명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훌륭한 촌장 덕에 풍족하게 사는 마을 사람들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할일 없는 말썽쟁이 청년들이나 모이곤 했죠.그래요. 꼭 촌장의 아들 같은 청년들이 모여서 술에 취해 마르크스를 외치곤 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한달두달 한해두해 시간이 갔어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죠. 그러다 갑자기 어느해 엄청난 가뭄이 온 러시아 땅을 덮친 거였어요. 땅은 말라붙고 숲과 들의 풀과 나무도 시들어서 부서졌죠. 개천은 진작에 쩍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냈어요. 가축들도 바싹 말라서 앓다가 쓰러졌어요. 사람들이 먹을 것도 점점 부족해졌죠.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훌륭한 촌장이 몇개나 우물을 파서 최소한 아껴서 마실 물은 돈을 내고 살 수 있었거든요. 먹을 것도 조금 비싸긴 했지만 촌장에게서 살 수 있었어요. 당장 돈이 부족해도 말라붙은 땅을 싸게 팔거나 조금 이자가 많이 붙지만 외상으로 살 수 있었어요. 굶어죽는 사람은 일단 없었죠. 아니 없다고들 생각했어요. 마을 밖 버려진 집에 있는 흉측한 아이는 아무도 나무통에 음식찌거리를 버리지 않아서 쫄쫄 굶고 있었지만요. 몇개나 우물을 파고도 물을 마시지 못해 바싹 마르고 있었지만요.

그렇게 시간이 가고 겨울을 앞 둔 때였어요. 무더운 여름을 겨우 버틴 사람들은 이제 긴긴 겨울을 또 굶으면서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다들 불안하고 초조하고 예민해서 화가 많아졌어요. 마을 여기저기서 크고작은 다툼들이 자꾸 생겼어요.

왜 우리는 이렇게 괴로워야하지? 왜 하루하루 빚이 늘어가는 걸까?

누군가 한탄했어요.

그건 우리가 먹을 것을 창고에 쌓아놓고 있는 사람 때문이다. 우리땅을 헐값에 뺐어가고 우리를 소작인으로 만든 사람 때문이다. 숲의 늑대와 곰을 핑계로 우리를 위협하고 착취하는 사람 때문이다.

누군가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리고 그런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붉은꽃을 달고 있거나 옷 어딘가에 붉은 천 조각을 붙인 사람들이었어요.

혁명이다! 혁명이야! 황제를 몰아내자! 귀족들을 몰아내자! 지주들을 몰아내자! 억압받고 착취당한 민중들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상은 비로소야 바닥부터 뒤집히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들이 전부가 되리라! 우리의 눈물의 대가는 저들의 피일지어니 일어나서 나아가자! 불태우고 무너뜨리자!

목덜미까지 금발고수머리를 늘어뜨린 곱상한 얼굴의 악사가 힘차게 노래하는 목소리로 외쳤어요. 그의 뒤에는 저마다 붉게 표식을 단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딱 따르고 있었죠. 당황한 경비대장은 멋지게 길렀던 수염이 엉망으로 흐트러지는 것도 신경쓰지 못하고 사람들을 막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미 그의 부하인 경비대원들고 겁 먹고 도망간 판에 성난 사람들을 그가 막을 수는 없었죠. 멱살이 잡히고 이리저리 떠밀리고 차이는 와중에 그의 자랑이었던 경비대의 제복도 찢어지고 더럽혀지고 엉망이되고 말았어요.

성난 마을 사람들은 경비대장을 마구때리고 괴롭혔지만 만족을 할 수 없었어요. 어째선지 순하고 착하던 마을 사람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아주 익숙했거든요. 그래서 성난 마을 사람들은 촌장의 집으로 향했죠. 한 손에는 저마다 농기구나 톱과 망치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더러는 아직 날이 환한대도 횃불을 든 사람도 있었어요.

이러지들 말게! 내가 마을을 위해서 자네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는지 잘 알지 않는가!

집 앞에서 사람들을 막아선 촌장이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어요.

당신이 마을을 위해서 우리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했다고? 그러면 왜 우리는 땅을 잃고 굶고 있는 건가? 왜 당신의 땅은 매일 넓어지고 창고가 커지는가?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외쳤어요. 옳다! 죽여라! 태워라!하는 목소리들도 튀어나왔어요. 사람들은 촌장을 둘러싸고 점점 점점 몰려들었어요.

제발 이러지들 말게! 제발! 땅을 돌려주겠네! 창고의 곡식도 나눠주겠어! 제발!

촌장은 바싹 다가온 사람들을 향해 애타게 외쳤어요. 사람들의 그 눈빛과 어깨 위로 머리위로 번뜩이는 날카로운 농기구들 이글거리는 횃불들. 그것들이 촌장 위로 쏟아져내렸어요. 으아악! 하는 외침이 들리고는 붉은 꽃을 단 사람들이 우루루 떠난 자리에는 커다란 붉은 꽃이 피었어요.

악덕 지주를 몰아냈다! 인민의 승리다! 누군가 촌장의 집에 횃불을 던지며 외쳤어요.

아니야! 난 이러려던게 아닌데. 누군가 겁먹은 소리를 내며 사람들 사이에서 주춤주춤 뒷걸음질로 빠져나왔어요. 촌장의 아들이었어요. 하지만 모두 앞으로 가는데 혼자 뒤로 가면 어떻겠어요? 마을사람들은 대번에 촌장의 아들을 발견했죠.

저게 누구지? 촌장의 아들 아닌가? 맞다. 촌장의 아들이다. 제 아비하고 똑 같은 놈이지. 아니야, 저놈이 더 나쁜 놈이야. 저놈은 제 아비를 믿고 마을 처자들한테 못된 짓을 하고 다녔거든. 술 마시고 행패 부린 거야 말할 것도 없고 말이지. 혁명이다! 혁명이야! 저놈도 제아비처럼 혁명해야 해! 죽이자! 태우자!

웅성웅성대던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폭풍우처럼 고함이 되었어요. 촌장의 아들은 주춤주춤 물러서다 도망을 치기 시작했죠. 하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낫이며 괭이며 삽이며 망치며 들고 자신을 쫓아오는데 어디 도망갈 곳도 없었지요. 그래서 그는 며칠이고 가지 않던 집으로 찾아들어가서 문을 쾅 닫고 문고리를 걸어 잠궜죠.

아니 당신이 어떻게 집에 다 온 거죠? 왜 그렇게 숨을 헐떡이는 거에요? 아하 또 남편이 있는 여자를 건드린 모양이죠? 이번에도 당신 아버지가 해결해줄텐데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있나요?

창가에 의자를 놓고 창밖을 보고 있던 예쁜 딸이 겁에 질려 문고리를 잡고 숨을 헐떡이는 남편 촌장의 아들에게 말을 했어요.

닥쳐! 하지만 겁에 질렸다고 자신의 부인인 예쁜 딸에게 잘 대해줄 촌장의 아들이 아니었죠.

흥! 또 때릴 건가요? 예쁜 딸은 코웃음을 쳤지만 촌장의 아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예쁜 딸도 본 거죠. 온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흉흉한 거를 손에 하나씩 둘씩 쥐고 집 주변을 둘러 싸는 것을요.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래요? 설마 당신 저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할 일을 한 거에요?

닥쳐! 닥치라고 못난 것!

당신 아버지에게 부탁해봐요. 그분은 촌장이니까 방법이 있을 거에요.

아버진 죽었다고! 저 사람들이 죽였어! 내 눈 앞에서 그랬다고!

오! 맙소사!

예쁜 딸은 촌장의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심각하다는 걸 알았어요. 이대로 자신은 죽는 걸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창 밖에 저 무서운 사람들 중에 꽃을 가져다 주던 사람이 있는 걸까? 그 사람이 도와주진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소용이 없는 것 같았어요.

혁명이다! 혁명이야! 촌장의 아들은 나와라! 집에 틀어박힌다고 혁명을 피하진 못한다!

밖에선 성난 외침이 계속 들리더니 무언가 문을 쿵 두드렸어요. 벽을 쾅 두드렸어요. 사람들이 농기구로 망치로 집을 마구 두드리는 거였어요. 누군가 무거운 돌을 들어 벽에 던졌고 집이 흔들렸어요. 챙그랑 창문이 깨지고 돌이 날아들었어요.

어떻게 좀 해봐요! 예쁜 딸은 비명을 질렀어요. 그러나 겁에 질린 촌장의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덜컹이는 문의 문고리만 잡고 있을 뿐이었죠. 촌장인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패를 부릴때나 아내인 예쁜 딸에게 손찌검을 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어요. 구부정하게 잔뜩 쪼그라든 그 모습은 아이처럼 보였어요. 부모를 잃고 외딴 곳에 버려진 아이처럼. 예쁜 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그모습을 볼 뿐이었죠.

마침내 쾅 하더니 촌장의 아들이 잡고 있던 문이 안쪽으로 넘어졌어요. 밖에서 몇명이서 나무기둥 같은 걸로 들이 받은 모양이에요. 문짝채로 촌장의 아들은 나무기둥에 깔려버렸죠. 하지만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았어요. 대신 휙 하고 불붙은 횃불이 들어왔죠. 휙휙 하고 계속 횃불이 뻥 뚫린 문으로 깨진 창문으로 들어왔죠. 집안에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어요. 집밖에서는 불이 번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는 것이 들렸어요.

끝이구나! 날름대는 불길이 벽을 천정을 타고 다가오는 것을 보며 예쁜 딸은 중얼거렸어요.

그때였어요, 와아 하는 사람들의 함성 사이로 어어?하는 당황한 목소리들이 섞이더니 무언가 불길에 휩싸인 부서진 문 구멍으로 뛰어들어왔어요. 안그래도 키가 작은데다 굽은 허리탓에 아이처럼 작아보이는, 하지만 팔다리가 어지간한 힘쎈 어른보다도 굵어서 아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지저분한 누더기를 걸친 흉측한 얼굴. 아! 흉측한 아이였어요.

너는? 그래 내가 결혼하기 전에 너에게 빵을 몇번 주었던게 기억나는 구나. 지금은 빵이 없단다. 그게 아니니? 너도 혁명을 하러 왔니? 나를 죽이러 왔니? 후후.

예쁜 딸은 불길에 빨갛게 노랗게 물든 얼굴로 작게 웃으며 물었어요.

어버, 어버버. 하지만 흉측한 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마디 하더니 휙휙 고개를 젓고는 절뚝절뚝이는 걸음으로 구불텅구불텅 걸어서 저심스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죠. 예쁜 딸은 그 손이 자신을 때리고 목을 조를 거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어요. 하지만 그 손은 그러지 않았어요. 지저분한 손, 흉터로 덮인 거친 손은 그녀의 옷깃을 잡아끌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어요. 어맛! 예쁜 딸은 깜짝 놀랐죠. 하지만 흉측한 아이는 그 작은 몸으로도 가뿐하게 그녀를 번쩍들더니 집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안돼! 사람들이, 마을사람들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예쁜 딸은 소리쳤지만 흉측한 아이는 불길을 뚫고 그녀를 안아들고 불타는 집밖으로 나왔죠.

저기봐! 촌장의 아들의 부인이다! 저 여자가 집 밖으로 나왔어! 아까 그 흉측한 괴물이 저 여자를 데리고 나왔어! 혁명이다! 혁명이야! 저 여자도 살려둬서는 않돼! 사람들은 다시 함성을 지르며 예쁜 딸에게 날카롭고 뾰족한 농기구를 향했어요.

버! 어버! 헝! 흉측한 아이는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쳤어요. 아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흉측한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소리친 것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흉측한 아이를 보고 얼굴을 찡그릴 뿐 포크 같은 쇠스랑을 찌르고 낫을 휘둘렀죠. 흉측한 아이는 안아든 예쁜 딸이 다칠까 몸을 이리저리 틀며 자신의 몸으로 막고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려고 했어요.

우와! 이 괴물이 도망가려고 한다. 같이 죽여! 저 흉측한 것도 죽여! 혁명이다! 혁명이야!

사람들은 흉측한 아이가 다치고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흥분해서 외쳤어요. 버! 어버버! 흉측한 아이는 다시 크게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안아든 예쁜 딸이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죠. 그래서 흉측한 아이는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을 비집고 밀치고 뛰어 넘으며 절뚝절뚝 구불텅구불텅 달리기 시작했어요.

우와! 괴물이 도망간다! 촌장 집안의 며느리가 도망간다! 막아라! 잡아라! 죽여라! 혁명이다! 혁명이야!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저마다 흉흉한 것을 휘두르고 내리치고 돌을 던졌어요. 흉측한 아이는 온몸으로 그것을 막고 맞고 달렸어요. 횃불들이 불타오르고 악을 쓰는 사람들의 표정이 휙휙 지나가고 피가 튀었어요. 붉은 꽃처럼 붉은 피가 튀었어요. 그리고 밤이 몰려왔죠.

흉측한 아이에게 안겨진 예쁜딸은 벌벌떨면서 두눈을 꼭 감고 또 두손을 얼굴을 가리고 있었어요. 한참을 몸이 흔들리고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이 쏟아지다다. 어느 순간 흔들리는 것이 줄어든다 싶더니 바스락거리고 포근한 바닥에 몸이 놓여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 새 밤이 깊었고 자신은 어딘가의 집안에 있는 것 같았어요. 몸을 움직이면 마른 풀이나 짚이 깔린 것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죠.

어딨니? 날 어디로 데려온 거니? 넌 날 구해준 거니? 왜? 내가 빵을 주어서? 하지만 그건 오래 전 일인데...

예쁜 딸은 어둠 속을 향해 물었지만 흉측한 아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어요. 하긴 어버버 하고 대답한다고 예쁜 딸이 그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예쁜 딸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 집 밖에서 우는 참새소리에 깨어났어요. 그리고 자신이 마을 밖 버려진 집에 누워 있다는 걸 알았죠. 지붕과 벽 곳곳이 갈라지고 부서져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집안에는 마른 풀들이 깔려있었어요. 아니 그건 풀이 아니라 잘 마른 들꽃들이었어요. 마르면서 약간 빛이 바랬지만 노오란 들꽃들이 집안에 가득 깔려있었어요.

아!

예쁜 딸은 누가 들꽃을 가져다 주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부서진 집안 한복판에는 깨끗하게 닦은 넓고 평평한 돌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빵 몇 덩이가 놓여있었어요. 오래 되어서 빨갛게 파랗게 곰팡이로 뒤덮인 빵들이 놓여있었죠. 딱 한 덩이 빵에만 한 입 물어 뜯은 자국이 있었고 나머지 빵은 온전히 그모양 그대로였죠.

노오란 들꽃들이 바스락거리고 빨갛고 파란 빵 위로 부서진 천정과 벽에서 햇살들이 쏟아졌어요. 사방은 조용했고 흉측한 아이는 보이지 않았어요.예쁜 딸은 바닥에 깔린 바싹 마른 노오란 들꽃을 쓰다듬었어요. 바스락거리고 사각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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